All posts by 이한규 HK연구교수

기니의 자유로운 총선

19Oct/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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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기니에서는 1958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2013년 9월 28일 자유로운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원래 2011년 12월 29일에 예정되었지만, 2012년 7월로 연기되었다가 올해 우여곡절 끝에 실시되었다. 9월 28일 실시된 이번 총선은 같은 해 6월에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7월로 또 한 차례 연기되었다가 실시된 것이다. 야당은 불리한 선거구의 재조정과 선거인단 명부의 재 작성을 요구하며 이번 총선을 보이콧 했었다. 이번 총선은 큰 마찰 없이 비교적 평온하게 실시되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거 결과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 만평은 꽁데(Conde) 대통령이 선거 결과는 올해 11월이 될지 내년 11월이 될지 모른다고 할 것이라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출처: http://www.jeuneafrique.com/oeil-de-glez-ARTJAWEB20131016112510.html

2014년 신아프리카 정책을 준비하는 미국의 행보에 주시하자

19Oct/13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미국의 아프리카 정책은 중장기적인 경제적 이해관계보다는 아프리카 상황 변화에 따른 수동적인 접근을 하여 왔다. 9·11 테러 이후의 아프리카 사령부 출범(AFRICOM), 중국의 아프리카에 대한 전방위적인 자원 개발에 대한 경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아프리카에 대해 강도 높은 접근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적극적이고 대대적인 방법으로 아프리카 정상들을 맞이할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정상 회담 일자, 장소, 초정 정상의 리스트 등이 밝혀진 바는 없지만, 이것은 미국의 아프리카 관계사에서 아주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적으로 미국의 아프리카 관심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식민주의 운동과 독립 이후의 냉전 체제에서의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자유 진영 보호 및 확산이었다.

특히 9·11테러 이후에는 중동의 테러 집단을 겨냥한 군사 안보를 중심으로 협력이 이루어져 왔다. 비록 미국이 아프리카 경제 성장법(AGOA)를 통해서 아프리카와 경제적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 규모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 비교될 수 있는 수치는 아니다. 특히 미국이 아프리카로부터 들여오는 품목의 대부분은 원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후, 2009년과 2013년 두 차례 아프리카를 방문하여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오바마의 아프리카 접근은 역대 대통령과 유사하게 민주주의, 굿거버넌스, 정부의 투명성, 시민 사회, 시민 자유의 신장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3월 28일, 오바마는 민주주의적으로 통치를 잘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판단한 베냉의 야이(Boni Yayi) 대통령, 기니의 꽁데(Alpha Condé) 등 4명의 아프리카 대통령을 초청한 바 있다. 같은 해 4월 시에라리온의 코로마(Ernest Bai Koroma), 말라위의 반다(Joyce Banda), 세네갈의 샬(Macky Sall) 그리고 카브-베르데의 네베스(José Maria Pereira Neves) 정상들을 초청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들을 살펴볼 때, 2014년에 대대적인 아프리카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의 행보는 크게 두 가지로 예측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프리카에 대해서 크게 잃은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실현된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 기업들은 아프리카에서 확실한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한, 정부가 투자 보장을 담보해 주어도 리스크가 있는 투자를 쉽게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고 하겠다. 두 번째는 미국은 한국, 프랑스, 중국, 인도, 일본처럼 아프리카 정상급 지도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국제적인 포럼을 개최하지 않았다. 따라서 2014년 예정된 아프리카 정상회담에서는 민주주의의 척도와 상관없이 미국이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거 초정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아프리카 사령부가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아프리카 정치·군사적인 전략은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우회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2014년으로 예정된 미국에서의 아프리카 정상회담은-그 규모나 방향은 아직 명확하게 알려진 바 없지만-한국, 중국, 인도, 일본에서 실시하고 있는 국제포럼의 방향과 목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된다.


말리의 투표

19Aug/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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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한 차례 내전을 겪은 말리에서는 2013년 8월 11일 약 690만 말리 유권자들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소로 나섰다. 유권자들은 1차 투표에서 다수를 차지한 두 명의 후보 중 한 명을 선택하게 될 이번 대통령 선거는 케이타 전 총리와 시세 전 재무장관 간 결선투표로 지난 11일 실시되었다. 말리 사태에 군사적 개입을 한 프랑스는 선거를 통한 말리 신정부 수립과 이후 말리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프랑스 대통령 올랑드의 계획을 시사하고 있다: “우선 말리 선거를 확고히 하고, 그 다음은 말리를…”


출처: http://fr.images.search.yahoo.com/images/view;_ylt=A0S0uewpWg9SfB4AlxBlAQx.

7월 14일 프랑스 혁명 기념식에서의 아프리카 군사 퍼레이드 의미

19Aug/13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매년 7월 14일이면 2.6㎞ 긴 샹젤리제의 평온한 거리는 마치 군사 박물관을 연상케 할 만큼 다양한 병과의 프랑스 군인들의 화려하고 정제된 퍼레이드를 펼쳐진다. 필자도 유학시절 몇 차례 군사 퍼레이드를 구경하였지만 볼수록 장관이었고 프랑스인들의 환호는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군사 퍼레이드에서는 말리 사태의 군사적 개입에 대한 성공과 프랑스의 역할 위상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기 위해서 60명의 말리 군과 13개국에서 국제연합군으로 참여한(Misma) 아프리카 군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7월 1일부터 말리의 평화유지를 위해 파견된 50여 명의 유엔군(Minusma)이 뒤를 이었다. 특히 프랑스는 60명으로 구성된 말리 군을 프랑스 군과 함께 나란히 퍼레이드에 참여시킴으로써 탈냉전 이후 그리고 코트디부아르 사건 이후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주춤해졌던 프랑스의 영향력을 회복한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말리에는 아직도 3,200명의 프랑스 군이 말리 정부 구성과 정국 안정화를 위해 파견되어 있다.

   콩코르드 광장에 설치된 사열대에는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반기문 UN 사무총장, 트라오레, 말리의 과도기 정부 대통령 뎀벨레(Ibrahima Dahirou Dembélé) 및 아프리카에서 온 13명의 국방부 장관들이 참석하였다.

   아프리카군의 프랑스 혁명 기념의 참여는 아프리카 독립 50주년 기념하기 위해서 2010년 사르코지 정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시 아프리카에 관련된 기념행사가 구 식민종주국 프랑스에서 시행된다는 것에 대한 적지 않은 국내외적 비판이 있었다는 점에서 성공적-프랑스 입장에서-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코트디부아의 그바보그 정부는 노골적으로 왜 아프리카가 프랑스가 주최하는 아프리카 독립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야하는 지 모르겠다며, 군사퍼레이드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고, 단지 군 사령관만을 식장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이번 아프리카 군인들의 7월 14일 퍼레이드는 여러 가지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첫째, 프랑스는 구 식민지와의 관계를 의미하는 프랑사프리크(Fançafrique)를 포기한다고 했지만, 여전히 아프리카에 프랑스군의 위용을 통해서 아프리카에 영향을 미치려는 올랑드 신정부의 꼼수라는 지적이 있다. 둘째, 이러한 결정이 프랑스 국민 모두에게 공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일부 인권단체들은 이러한 군사 퍼레이드는 말리에서 프랑스군이 저질은 비인륜적인 범죄를 감추려는 속내라고 비난하고 있다. 셋째는 아프리카 내전에 대한 프랑스의 개입을 국제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신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더욱이 말리 북부사태에 대해서 올랑드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아프리카 평화를 위해서 프랑스 군이 개입 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올랑드가 집권 이후 프랑스의 가장 중대한 경제 회복과 실업자문제 해결을 위한 재정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말리 개입에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프랑스의 대 아프리카 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군사 퍼레이드에 참여한 아프리카 국가들 중에 차드, 토고, 중앙아프리카, 콩고, 가봉, 부르키나파소, 지부티, 카메룬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들이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아프리카 민주화에 대한 프랑스의 의지를 의심케 하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팜 오일의 미래

19Jun/13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팜 오일은 아프리카 국가, 특히 대서양 연안의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1차 산품으로 수출 무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음식 조리(특히 도시에서)에서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기초 양념이다. 20세기 초에는 팜 오일은 플랜테이션 식민 경제를 통해 주요한 환금 작물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유럽은 20~30만 톤의 팜 오일을 수입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는 시기인 1960년대, 나이지리아와 콩고 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이 세계 팜 오일 생산량의 74%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17%는 아시아와 태평양 군도 국가들이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9년에 들어서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프리카는 세계 팜 오일 생산량의 14%를 차지하게 되었고, 반대로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생산량의 78%를 점유하였다. 아프리카의 주요 생산국은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부아르로 전체 생산량의 50%를 차지하고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 생산량의 59%, 인도네시아가 19%의 팜 오일을 생산하였다. 2000년에서 2001년 사이에 전 세계의 팜 오일 생산량은 1,700만 톤이었는데,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생산량은 100만 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5.8%를 차지할 정도로 아프리카는 더는 팜 오일의 생산지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남아시아의 기후 조건이 아프리카의 기후 조건보다 훨씬 유리한 점도 있지만, 꾸준한 연구와 개발(특히 말레이시아), 그리고 대량 생산을 위한 공업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프리카의 팜 오일 생산은 아시아 국가보다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되고, 기업이 소규모로 운영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팜 오일 생산의 공업화를 적극 실시하고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양적, 질적 생산체계를 단기간 내에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1985년부터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팜 오일 생산국에서 팜 오일 경작지가 연간 작물 의 생산을 위해서 감소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함께 팜 오일의 생산과 유통이 다원화되고, 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그동안 주요 수입국에만 안일하게 의지해왔던 수출 체계에도 빨간 불이 켜지면서 아프리카 팜 오일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난 6월 11일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서 최초의 아프리카 팜 오일 회의를 개최하였다. 6월 13일까지 열린 회의의 주제는 크게 3가지였다. 팜 오일은 아프리카에 있어서 위기인가? 위협인가 ? 아프리카 농업은 실패인가? 서아프리카는 팜 오일의 세계적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서 참석자들은 모두 팜 오일의 역내 시장 활성화와 아프리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해외 지사들의 축출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의 공통적인 결론은 일단 현재의 팜 오일 생산량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코트디부아르는 2020년까지 약 60만 톤의 팜 오일을 생산할 것을 선언하였다.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가 91만 톤을 생산하는 최대 생산국이고, 39만 톤을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가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국가가 생산하는 팜 오일은 말레이시아의 1천9백만 톤, 타일랜드의 2백만 톤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이다. 여하튼 팜 오일은 아프리카의 1차 주요 환금 작물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식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질적인 문제보다는 양적인 생산량의 문제가 더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의 팜 오일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이 2백만 명(20만 가구)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팜 오일의 문제는 코트디부아르의 경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