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팜 오일은 아프리카 국가, 특히 대서양 연안의 서아프리카 국가들의 1차 산품으로 수출 무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음식 조리(특히 도시에서)에서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기초 양념이다. 20세기 초에는 팜 오일은 플랜테이션 식민 경제를 통해 주요한 환금 작물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유럽은 20~30만 톤의 팜 오일을 수입하였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하는 시기인 1960년대, 나이지리아와 콩고 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이 세계 팜 오일 생산량의 74%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17%는 아시아와 태평양 군도 국가들이 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89년에 들어서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프리카는 세계 팜 오일 생산량의 14%를 차지하게 되었고, 반대로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 생산량의 78%를 점유하였다. 아프리카의 주요 생산국은 나이지리아와 코트디부아르로 전체 생산량의 50%를 차지하고 있었고,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 생산량의 59%, 인도네시아가 19%의 팜 오일을 생산하였다. 2000년에서 2001년 사이에 전 세계의 팜 오일 생산량은 1,700만 톤이었는데,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생산량은 100만 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5.8%를 차지할 정도로 아프리카는 더는 팜 오일의 생산지라고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동남아시아의 기후 조건이 아프리카의 기후 조건보다 훨씬 유리한 점도 있지만, 꾸준한 연구와 개발(특히 말레이시아), 그리고 대량 생산을 위한 공업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아프리카의 팜 오일 생산은 아시아 국가보다 소규모 농장에서 생산되고, 기업이 소규모로 운영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팜 오일 생산의 공업화를 적극 실시하고 있지만 동남아시아의 양적, 질적 생산체계를 단기간 내에 따라잡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1985년부터 경제 침체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팜 오일 생산국에서 팜 오일 경작지가 연간 작물 의 생산을 위해서 감소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함께 팜 오일의 생산과 유통이 다원화되고, 경쟁 체제에 돌입하면서 그동안 주요 수입국에만 안일하게 의지해왔던 수출 체계에도 빨간 불이 켜지면서 아프리카 팜 오일에 대한 전반적인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난 6월 11일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서 최초의 아프리카 팜 오일 회의를 개최하였다. 6월 13일까지 열린 회의의 주제는 크게 3가지였다. 팜 오일은 아프리카에 있어서 위기인가? 위협인가 ? 아프리카 농업은 실패인가? 서아프리카는 팜 오일의 세계적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를 위해서 참석자들은 모두 팜 오일의 역내 시장 활성화와 아프리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해외 지사들의 축출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의 공통적인 결론은 일단 현재의 팜 오일 생산량을 두 배로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코트디부아르는 2020년까지 약 60만 톤의 팜 오일을 생산할 것을 선언하였다. 현재 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가 91만 톤을 생산하는 최대 생산국이고, 39만 톤을 생산하는 코트디부아르가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국가가 생산하는 팜 오일은 말레이시아의 1천9백만 톤, 타일랜드의 2백만 톤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이다. 여하튼 팜 오일은 아프리카의 1차 주요 환금 작물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식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질적인 문제보다는 양적인 생산량의 문제가 더 시급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의 팜 오일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이 2백만 명(20만 가구)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팜 오일의 문제는 코트디부아르의 경제, 사회적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