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보코하람의 무차별 테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그 후 상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2009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보코하람의 악행으로 35,000여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180만여 명이 자신의 고향이나 거주지를 떠나 난민이 되어버렸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만 여 명의 난민은 아부자나 그 외 지역으로 옮겨갔지만 이들은 낯선 곳에서 자립을 해야 했다. 교회나 비영리단체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했다.
일부 사람은 아부자에서 멀지 않은 아우타발레피(Auta Balefi) 지역으로 옮겨 갔다. 이들은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임시 거처에서 지내며, 농사를 지을 땅을 무료로 혹은 추수 후 농산물로 갚는 조건으로 제공받기도 했다. 지역사회의 도움이 난민들에게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이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기에 부족했다. 이들이 제공받은 땅에서 농사를 지어 농작물을 수확한다 한들, 이를 구입할 소비자가 없는 것도 경제적 어려움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자 이 난민들은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역의 촌장이나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 여러 가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약 3개월 뒤에, 이들은 다시 토지를 빌려 창고를 세우고 ‘난민 농민의 콩시장(市場)’(Internal Displace Persons Farmers’ Beans Market)이라 이름 붙였다. 그리고 농민들은 다른 지역의 구매자들과 접촉해 이 시장으로의 유입을 도모했다. 설득과 협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타 지역에서 상인과 구매자들이 아우타발레피로 몰려들었으며 시장은 호황을 맞기 시작했다. 콩을 팔아 하루에 1달러를 겨우 벌던 상인들은 수십 달러어치의 콩을 팔게 되었다. 시장의 호황은 단순히 콩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장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시장 한 편에 옷이나 신발, 가방, 수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상인도 등장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나르기 위해 택시나 바이크 운전사들도 호재를 맞이했다. 위기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한 아우타발레피 난민들의 이야기는 다른 지역으로까지 전해지게 되었으며, 타 지역의 난민들에게도 재기에 대한 희망과 모범 사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