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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중동에서의 반정부 시위와 한국

19Oct/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튀니지의 국화인 재스민으로부터 유래된 튀니지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는 튀니지 벤알리 대통령과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권좌에서 밀어내면서 북아프리카 및 중동각국으로 번지고 있다.

   반정부 시위는 모로코, 요르단, 예멘, 바레인, 시리아, 오만,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북아프리카 및 중동 각국으로 번지면서 북아프리카지역과 중동지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변하여 카다피 측과 반 카다피 측으로 나뉘면서 리비아 상황은 내전 상황이 되고 있다. 반카다피측은 벵가지를 비롯한 중요지역을 장악하고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 중이고, 반면 카다피 측은 탱크와 헬기를 동원하면서 반격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리비아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및 중동사태는 중동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산유국들을 자극시켜서 유가의 향방이 한국으로서는 첫 번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아프리카 및 중동사태 초기에 유가는 1배럴당 150달러에서 200달러로 될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반카다피 봉기로 리비아산 원유가 반으로 줄어들어 생산되자, 브렌트 원유는 1배럴당 119.72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루 생산량 70만 배럴을 증산하자 1배럴당 116달러로 떨어지고는 있긴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로서는 물가불안과 실업 등 국내의 해결사항이 세계경제의 유가불안과 맞물려 원유의 증산을 가져오게 한 것이다. 더욱 OPEC도 리비아 사태로 인하여 세계경제를 염려하여 회원국들이 증산을 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OPEC의 다음 모임은 6월에 열리게 되는데, 이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석유가격을 논의할 예정이다.

   만약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증산에 나서지 않을 경우, 1배럴당 150달러에서 200달러에 이르는 고유가가 되면, 한국의 주력 수출상품 구성이 자동차, 가전 등 내구재 부문과 관련 부품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산업계가 에너지절약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고유가에 따른 한국경제의 충격은 지금보다 커지게 될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원유가가 10% 상승할 때 해당 연도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12% 포인트 올라가고, 민간소비는 0.12% 포인트, 총투자를 0.87% 포인트가 줄어들며, 경상수지는 20억 달러 가까이 악화되고, 국내총생산(GDP)은 0.21%포인트 낮아진다고 예측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의 북아프리카 및 중동사태가 당장 제3차 오일쇼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세계경제의 파국을 염려한 미국과 친미의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이 부합되는 생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원유를 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으로부터 대부분 원유를 들여오고 있기 때문에 즉 북아프리카 및 중동지역으로부터의 원유의존도가 84.5%나 되기 때문에 북아프리카 중동사태는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편이다. 한국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 사태로 인하여 북아프리카 및 중동지역에 가전제품, 휴대폰 등 상품시장과 건설시장을 확대하고 있는 중에 날벼락을 맞은 형국이 되었다.

   또 한국은 다른 선진국과 같이 북아프리카펀드 및 중동펀드를 통하여 북아프리카 및 중동 증시에 투자하고 관계로 이집트 증권시장, 두바이 증권시장, 쿠웨이트 증권시장 등에서 지수가 떨어지면 수익률 하략이 불가피하면서 한국증권 시장이 큰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아무튼 한국경제와 국민의 생활을 위하여 중동 및 북아프리카와 중동 사태가 하루빨리 진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리비아 내전과 카다피

19Oct/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는 2011년 2월 22일 인권변호사 2명의 석방을 요구하던 시위 군중 중 2명이 사망하자 단순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변질되었다. 점차 반정부 시위가 변하여 카다피 측과 반 카다피 측으로 나뉘면서 리비아 상황은 총알과 폭탄이 난무하는 내전 상태로 치닫고 있다.

   반카다피 측은 벵가지를 비롯한 중요지역을 장악하고 수도 트리폴리로 진격 중이고, 반면 카다피 측은 탱크와 헬기를 동원하면서 반격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리비아 해안선을 따라 전투를 치르면서 친카다피 측과 반카다피 측은 엄청난 희생자들을 내고 있고, 양측은 주요지역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지경에 있지만 와팔라부족과 알주와이야 부족이 중심이 된 반카다피 측은 카다파 부족이 중심이 된 카다피 측을 조금씩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반카다피 진영은 30명으로 구성된 ‘리비아 국가위원회’를 설립하였고, 과도정부인 국가위원회는 2월 5일 그들이 리비아를 대표하는 유일한 집단이라고 선언했다. 무려 42년간 리비아에서 독재를 행하였던 카다피는 거대한 풍랑 속에 놓여 버린 꼴이 되었다. 풍랑 속에서 카다피가 아직까지 건재한 이유는 미국의 뉴스위크지가 지적한 바와 같이 첫째, 여전히 리비아의 주요 부족과 군대 내 파벌로부터 변치 않는 충성을 받고 있고, 둘째, 카다피는 리비아가 내전으로 쪼개져도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셋째, 카다피가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리비아는 카다피 이후 시대를 이끌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점도 카다피가 건재하고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건재함도 만약 국제사회가 카다피에 대한 제제와 축출을 원한다면 카다피는 운명은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 자명하다. 즉 지금의 카다피로서는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의 획득’이란 점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카다피는 풍랑 속에서 나오기 위한 전략 특히 국제사회에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카다피는 반정부 시위 이후 내전상황에 이르기까지 반정부 시위대와 반정부군을 빈 라덴에 의하여 사주 받은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리비아 내의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은 거의 카다피에 의하여 소탕되었기에 리비아 내에서는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이 거의 없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다소 있다고 하더라도 리비아 극단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라크 나 아프가니스탄에 갔기 때문에 리비아 내에서 거의 활동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카다피는 반정부군을 테러리스트로 몰고 있는 이유는 첫째, 자국민으로 이루어진 반정부군에 대한 포격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부르짖는 ‘테러와의 전쟁’을 세계에 각인시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반정부군을 돕는 사태를 예방하자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다피가 유엔이 조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카다피가 리비아 내에서 정통성을 가지고 있고,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반정부군을 도우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 때문이다.

   또 그동안 리비아의 석유 힘으로 아프리카 연합(AU)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카다피이지만 말리와 세네갈 등 몇몇의 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하곤 아랍,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거의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카다피로서는 내전이 끝나면 리비아를 떠나 마땅히 갈 곳도 없는 셈이다. 이러한 지역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카다피가 아프리카 연합의 조사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도 아랍 아프리카국가들이 반정부군을 돕는 것을 차단하려는 전략과 내전 이후 카다피의 망명길을 모색하려는 전략이다.


소말리아 해적의 발생과 해적산업의 시작

19Oct/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1969년 소말리아에서 쿠데타라는 정변이 생긴다. 무함마드 바레 소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자기 부족만을 우대하는 정책을 벌이자, 이에 대항하여 여러 군벌들이 통일 소말리아 회의(Union of Somali Congress, USC)를 조직하고 무함마드 바레에 대항한 후에 1991년 바레정권을 축출하였다. 권력을 장악한 통일 소말리아 회의는 아이디드가 실권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디드는 마흐디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아디디드와 마흐디 간의 반목이 생겼고, 군벌에 기반 한 아이다드와 마흐디 세력 간에 내전이 발발하였다. 이 내전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개입하였으나 1993년 6월 다국적군은 파키스탄 병사가 죽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이디드파 군을 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소말리아인 군벌들은 다국적군을 공격하였다. 결국 다국적군은 철수하였고, 2005년 과도연방정부가 결성되고 모가디슈에서 베아도아로 근거지를 옮기자, 그동안 반발해 왔던 이슬람법정연합세력이 모가디슈를 비롯한 남부 소말리아전역을 장악하고, 소말리아는 이후 무정부상태가 되면서 내전을 촉발한 군벌들 간에 다시 내전상태에 돌입하였다. 이후 등장한 강경 이슬람 반군세력인 알-샤바브는 소말리아 남부지방과 수도 모가디슈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소말리아 정부군은 유엔과 아프리카연합기구(AU)의 지원 하에 알-샤바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왔다.

   이 와중에 북부 5개 지역을 가진 소말리랜드는 1993년 소말리랜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이 소말리랜드는 아직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내전을 위한 전비를 마련하고자 다양한 색깔을 가진 군벌들은 외국배를 납치하고 해적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소말리랜드 아래쪽의 푼트랜드에서의 해적활동은 왕성하기 시작하였다. 즉 내전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면서 소말리아 어업 인프라는 모두 망가졌으며, 또 한편 외국 배들이 경제수역권 안에서 마음대로 고기를 잡고 폐기물을 쏟아 버리면서 고기가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 어부들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는 바다를 ‘자원 해안 경비대(National Volunteer Coast Guard)’이란 단체를 조직하고 어선을 무장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해안경비는 언젠가부터 공세적인 해적질로 바뀌었다. 고기를 잡는 것보다 사람과 배를 나포하는 편이 더 수익이 된다는 점을 소말리아인들이 깨닫기 시작하였다. 소말리아 해안을 장악하고 있는 군벌들이 어민들의 해적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한 수익을 주요한 재원 확충 사업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해적은 20세에서 35세 정도로 소말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푼트랜드 출신이다. 동아프리카 항해협회(East African Seafar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최소한 5대 갱 집단이 있고 각각 1000명 정도의 무장병력이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BBC 보고에 의하면, 해적은 세 부류로 나뉜다. 즉 지역 어부로서 이들은 인근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적의 수뇌부를 이룬다. 또 전직 군인들로서 이들은 소말리아 내전에서 싸웠던 이들로, 노동력과 전투력을 공급한다. 마지막 기술자들로서 이들은 GPS 시스템, 항해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해적들은 활동범위를 넓혀 닥치는 대로 외국배를 나포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나포는 성공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은 생계형에서 기업형으로 변화하였다. 실패 때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성공할 때에는 인질의 몸값으로 수백만 달러에서 수백억 달러의 돈을 벌게 된다.


이집트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

18Oct/11
이집트 이슬람과 기독교의 공존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만평을 보면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 그려진 기독교인과 이슬람의 상징인 초생달이 그려진 무슬림이 사이좋게 1월 25일이라고 쓰여진 이집트 국기를 들고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와중에 털이 달린 괴물의 손이 그들을 노리고 있다.

   이집트에서 유혈충돌의 발단은 지난 5월 강경파 무슬림 500여 명이 카이로 외곽 임바바 지역의 한 기독교 계통인 콥트 교회 앞에서 무슬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한 한 여성이 이 교회에 억류돼 있다”고 주장하며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처음 교회진입을 차단하는 교회 경비원들과의 말다툼이 이후에는 화염병과 투석전으로 번졌고 곧이어 총격전이 오가는 유혈사태로 확대됐다. 이 결과 12명이 사망하고 2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남부 아스완에 있는 한 콥트 교회가 무슬림에 공격당한 뒤 수천 명의 콥트 기독교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군이 실탄을 쏘며 저지하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고 차량에 불을 지르며 맞섰다.

   이러한 사건의 발단에 이집트 군부가 있다고 판단한 콥트 기독교인들이 군부에 반대해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를 벌였다. 군은 시위대를 무역진압하면서 26명이 숨지고 5백 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이러한 시위의 성격은 처음 종교간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시위대 일부가 “무슬림과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라고 외치고 무슬림 일부가 “기독교인은 물러가라. 이슬람, 이슬람”을 외치는 등 시위의 성격이 복잡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에삼 샤라프 이집트 총리는 “종교분쟁이 아니라 민주주의로 가려는 이집트를 방해하려는 음모 같다”면서 사태 진정을 위한 비상각의를 소집했다. 즉 군부가 종교 갈등을 부추겨 집권 연장을 꾀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군부는 10월 15일 종교적 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을 승인했다. 즉 개정안은 “성별, 출신, 언어, 종교나 신념”에 근거한 차별행위에 대해 3만 이집트파운드(한화 약 58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과 특히 공무원이 차별대우한 경우에는 적어도 3개월의 징역형을 받거나 최소 5만 이집트 파운드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집트 정국은 혁명이후 후세인 탄타위 군 최고위원회(SCAF) 사령관이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는데 군부가 약속한 6개월이 훨씬 지난 권력 이양 시점을 늦춰 불신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기독교인과 무슬림간의 화해를 바라고 있으면서 검은 손은 이집트 군부를 지칭하는 만평이 나온 것이다.


출처: 이집트 아흐람지 (2011년 10월 13일) 만평

남아공의 투자 과열

12Oct/11
남아공의 투자과열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Business Day지에 실린 만평이다. 이는 최근 남아공에서 외국 투자가 과열되는 양상을 빗대고 있다. 남아공의 외국 투자자들은 산업분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 투자를 행하고 있는데, 이들 투자가 이른바 ‘묻지마!’적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 이들 투자자들은 영국의 유명한 은행인 바클레이 은행이 제안하는 대로 따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래서 많은 물고기들을 이끌고 가는 물고기를 Barclays라고 쓰고 있다.

   월드컵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최근 들어 한국 기업들의 남아공 진출이 많아지고 있는데, 신규 투자자의 자신감을 믿기 보다는 이러한 남아공의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Business Day가 남아공 현지의 유력 경제일간지인 만큼 경제현실에 대한 이들의 진단이 설득력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출처: http://www.businessday.co.za/Life/Content.aspx (06 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