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리아 해적의 발생과 해적산업의 시작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1969년 소말리아에서 쿠데타라는 정변이 생긴다. 무함마드 바레 소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뒤 자기 부족만을 우대하는 정책을 벌이자, 이에 대항하여 여러 군벌들이 통일 소말리아 회의(Union of Somali Congress, USC)를 조직하고 무함마드 바레에 대항한 후에 1991년 바레정권을 축출하였다. 권력을 장악한 통일 소말리아 회의는 아이디드가 실권을 가지게 되었고, 아이디드는 마흐디를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아디디드와 마흐디 간의 반목이 생겼고, 군벌에 기반 한 아이다드와 마흐디 세력 간에 내전이 발발하였다. 이 내전에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개입하였으나 1993년 6월 다국적군은 파키스탄 병사가 죽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이디드파 군을 공격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소말리아인 군벌들은 다국적군을 공격하였다. 결국 다국적군은 철수하였고, 2005년 과도연방정부가 결성되고 모가디슈에서 베아도아로 근거지를 옮기자, 그동안 반발해 왔던 이슬람법정연합세력이 모가디슈를 비롯한 남부 소말리아전역을 장악하고, 소말리아는 이후 무정부상태가 되면서 내전을 촉발한 군벌들 간에 다시 내전상태에 돌입하였다. 이후 등장한 강경 이슬람 반군세력인 알-샤바브는 소말리아 남부지방과 수도 모가디슈의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으며, 소말리아 정부군은 유엔과 아프리카연합기구(AU)의 지원 하에 알-샤바브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왔다.

   이 와중에 북부 5개 지역을 가진 소말리랜드는 1993년 소말리랜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이 소말리랜드는 아직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편 내전을 위한 전비를 마련하고자 다양한 색깔을 가진 군벌들은 외국배를 납치하고 해적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소말리랜드 아래쪽의 푼트랜드에서의 해적활동은 왕성하기 시작하였다. 즉 내전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면서 소말리아 어업 인프라는 모두 망가졌으며, 또 한편 외국 배들이 경제수역권 안에서 마음대로 고기를 잡고 폐기물을 쏟아 버리면서 고기가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소말리아 어부들은 나라가 지켜주지 못하는 바다를 ‘자원 해안 경비대(National Volunteer Coast Guard)’이란 단체를 조직하고 어선을 무장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해안경비는 언젠가부터 공세적인 해적질로 바뀌었다. 고기를 잡는 것보다 사람과 배를 나포하는 편이 더 수익이 된다는 점을 소말리아인들이 깨닫기 시작하였다. 소말리아 해안을 장악하고 있는 군벌들이 어민들의 해적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통한 수익을 주요한 재원 확충 사업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해적은 20세에서 35세 정도로 소말리아 북동쪽에 위치한 푼트랜드 출신이다. 동아프리카 항해협회(East African Seafarers’ Association)에 따르면, 최소한 5대 갱 집단이 있고 각각 1000명 정도의 무장병력이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BBC 보고에 의하면, 해적은 세 부류로 나뉜다. 즉 지역 어부로서 이들은 인근 바다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적의 수뇌부를 이룬다. 또 전직 군인들로서 이들은 소말리아 내전에서 싸웠던 이들로, 노동력과 전투력을 공급한다. 마지막 기술자들로서 이들은 GPS 시스템, 항해 등을 조작할 수 있다.

   이렇게 구성된 해적들은 활동범위를 넓혀 닥치는 대로 외국배를 나포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나포는 성공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다. 소말리아 해적은 생계형에서 기업형으로 변화하였다. 실패 때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만 성공할 때에는 인질의 몸값으로 수백만 달러에서 수백억 달러의 돈을 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