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에서 지역 정치의 지형: 정부, 추장, 그리고 지역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설병수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과 유사하게, 지난 수세기 동안 가나에서 추장은 상징적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적 의미를 지닌 존재로 여겨져 왔다. 또한 정부, 추장, 지역민은 서로 상이한 입장을 견지해 왔으며, 이 과정에서 추장은 정부와 지역민 간의 가교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2011년 5월 1일자 <The Accra Mail>에 “Worried About Conflicts and Chieftaincy Disputes”(Simbil Maxwell 작성)라는 제하에 실린 기사에서도 확인된다: “볼가 나바 ‘아다코야’ 축제(Bolga Naba ‘Adaakoya’ Festival)에서 상동부 지역(The Upper East Region) 장관인 워용고(Mark Woyongo)는 볼가탕가(Bolgatanga) 지자체의 기관장인 아얌가(Epsona Ayamga)가 대독한 연설문을 통해, 몇몇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과 추장제 관련 분쟁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개발 계획을 위해서 추장과 지주들이 토지를 양도할 준비를 항상 해놓을 것을 호소했다. 볼가탕가의 대추장인 아빌바 3세(Naba Martin Abilba Ⅲ)는 이 지역이 과거엔 청정 지역 중의 하나였으나, 최근엔 공중위생 상태가 상당히 악화되고 있음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지자체 의회가 이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더욱 노력해 줄 것을 촉구했다. 대추장은 사냥꾼들과 부도덕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는 관목 불태우기에 대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불태우고 있으며, 관목 불태우기는 과거사가 되어야만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양질의 교육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부가 교복과 연습장(鍊習帳)을 무료로 제공하고, 보조금을 인상해 주길 권고했다.

   가나의 추장제는 특별한 역사성 속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이전 시기에는 추장들이 다양한 정도의 종교·정치·경제·군사적 지도력을 행사했던 전통적 정치체제의 우두머리였다. 식민지 시기 동안 추장제는 합작, 훼손, 상호선택 등의 다양한 형태의 조작을 경험했다. 1950년대 후반, 즉 독립의 여명까지 민족주의자와 학자들은 근대화와 사회 변동으로 인해 추장제는 모순에 직면하거나 망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독립 이래 불안정한 탈식민지 가나에서, 추장제는 정치 지형에서 깊이 각인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가나인의 사회·정치적 과정의 분명하고 실제적 표현으로 열렬히 환영을 받아 왔다.

   오늘날 가나의 추장은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국가와 그 자신의 지역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전통적 추장들과 달리 지금의 추장들은 현대화되고 있으며, 국제 개발 계획 등의 새로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추장들은 상이한 세계들을 이어주는 매개자 혹은 중개인으로 기술될 수 있다. 그들의 속성은 모순, 애매함, 혼종성 혹은 융합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그들은 정부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역민들과 갈등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