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디노카나(Dinokana)의 바후르체(Bahututse)인들의 찬양시 마보코(Maboko)에 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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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김광수 HK연구교수는 2012년 1월 11일부터 1월 23일까지 남아공 North West Province의 Lehurutshe 지역의 Dinokana지역에서 츠와나(Tswana) 민족집단 중 하나의 하위 민족집단인 Bahurutshe People들의 구전역사와 찬양시(praise-poem) 마보코(Maboko)에 대한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찬양시는 식민지 이전 시대의 집단적 담화의 주요한 형식이었으며 집단적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찬양시에 대한 초기의 기록은 1801년(Borcherds 1863: 127)이고, 20세기에 많은 수의 왕을 찬양하는 시들을 기록하였다. 재능 있는 시인들은 자신들의 영감이 발동하면 추장이나 다른 유명한 사람을 위한 찬양시를 지었다. 그러나 여러 연령집단의 조직들이 가지고 있던 특별한 마보코는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죽으면 사라졌다. 식민지 이전 츠와나의 마보코 중 아주 일부가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나(See Jennings 1932: 89-90) 연장자가 죽으면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번 현지조사에서 바후르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인물, 사건, 지역에 대한 마보코를 채록하고 이에 대한 분석을 하였다.

    츠와나 민족집단이 1500년 무렵 바후르체(Bahurutshe), 바크웨나(Bakwena), 바크가틀라(Bakgatla)의 세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음페카네(Mfecane)가 있기 전까지 바후르체는 크고 작은 내분을 겪으며 현재의 마리코(Marico) 지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그들은 주변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다른 츠와나 집단들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당하고 분쟁에 시달림으로서 18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힘을 잃었다. 1820년대에 드라켄스버그 산맥의 동쪽에서부터 음페카네 전쟁이 바후르체 사회에 영향을 주었고 이 기간에 완전히 분열되었다. 1823년에서 1827년 사이에 그들의 정착지인 카디츠웨네(Kaditshwene)가 공격을 받았고 그 결과 대다수의 바후르체 공동체는 모세가(Mosega)의 남부로 이주하였다. 1835년 보어인(Voortrekkers)들이 트랜스가리엡(Transgariep)에 도착했고 바후르체 집단은 보어인들과 협력 관계를 택했다. 바후르체 집단은 보어인이주자들을 트랜스발의 새 지배자로서 수용하였다.

    1882년 제1차 앵글로-보어전쟁 이후 바후르체 바 가 모일와(Bahurutshe ba ga Moilwa)는 자신들의 요새를 파괴하고 디노카나 입구에 평화 기념물을 건설하는 굴욕을 당했다. 또한 보어인들에게 대항한 이칼라펑(Ikalafeng)에 대해 무거운 벌금을 가했다. 제2차 앵글로-보어 전쟁 동안 영국은 디노카나에서 바후르체 바 가 모일와를 무장시키고 훈련시켰다. 영국의 편에서 싸운 대가로 토지를 바랬으나, 전쟁 후 새로운 영국 행정부의 인종차별정책으로 바후르체 공동체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