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프라(Biafra) 분리 독립 지도자 은남디 카누(Nnamdi Kanu)

   은남디 카누(Nnamdi Kanu)는 재판도 없이 반역죄로 1년 반을 감옥에서 보낸 후에야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는 이보(Igbo) 족으로 2014년 비아프라원주민(Indigenous People of Biafra : IPOB)이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이보족이 주로 살고 있는 나이지리아 남동부 지역의 분리 독립 운동을 이끌었다.

   역사적으로 1967년 이보족은 나이지리아 연방에서 탈퇴하여 비아프라(Biafra)라는 국가를 만들고 분리 독립을 추진하였지만 혹독한 내전을 겪은 후 실패한 바 있다.

   1960년 10월 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을 당시부터 나이지리아는 이미 3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북쪽은 대부분 무슬림으로 하우사(Hausa) 족이, 서쪽에는 요루바(Yoruba) 족이, 동쪽에는 이보족이 대표적인 민족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1963년에 결국 나이지리아는 연방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

   1966년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예정된 선거가 무산되었고 나이지리아의 첫 번째 수상인 아부바카르 타파와 벨레와(Sir Abubaker Tafawa Balewa)가 살해 당했다. 벨레와는 북부 지역 출신이었으나 새로운 군사령관인 존슨 아구이-일론시(Johnson Aguiyi-Ironsi) 장군은 이보족 출신이었다. 그는 연방 정부 체제를 붕괴시키고 많은 이보족을 고위 공직자에 임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북부 지역에서 폭동으로 이어져 1966년 7월 아구이-일론시가 살해 당하고 야쿠부 고원(Yakubu Gowon) 장군이 권력을 잡았으나, 동부 지역의 군사령관인 오두멩구 오주쿠(Odumegwu Ojukwu)가 고원을 지지하지 않았다. 1967년에 더 많은 민족 집단에 권력을 배분하려는 시도로 고원은 4개 지역(Region) 12개 주(State)로 국가를 재편성하고자 하였으나 오주쿠는 동부 지역의 분할에 대해 반대하였다.

   오주쿠가 통치하는 동부 지역은 결국 1967년 5월 30일 비아프라 공화국(Republic of Biafra)으로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비아프라 공화국은 북부 무슬림의 정치적 지배에 두려움을 느끼던 이보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국가였다. 특히 나이지리아 북부와 서부에서 일어난 수천 명의 이보족에 대한 학살은 이보족의 생존에 중요한 위협이 되었다. 또 다른 이유는 원유가 동부 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아프라 내전(Nigerian Civil War)은 1967년 7월 6일에 발생하였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비아프라의 분리 독립 시도를 서둘러 무산시키기를 희망했지만, 냉엄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2년 반 동안 지속되었다. 비아프라인(Biafrans)은 초기에는 전쟁에 승리를 했지만, 1969년 12월에는 세력이 약화되었다. 식량과 군 장비의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 비아프라인은 굶주림으로 인해 1970년 1월 13일에 아미치(Amichi)에서 항복했다. 비아프라 공화국의 대통령인 오주쿠는 국외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비아프라 지역의 분리 독립을 위한 움직임은 꺼지지 않고 계속되었고, 카누는 가장 최근에 활동한 비아프라 분리 독립 활동가였다. 그는 2009년 영국에서 비아프라 라디오(Radion Biafra) 방송국을 만들고 나이지리아에 이보족의 독립을 주장하는 방송을 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카누는 나이지리아 남동부에서 성장했으며 은수카 대학교(University of Nigeria, Nsukka)를 다녔고, 졸업하지 않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이 대학교는 비아프라 내전 당시 비아프리카 대학교(University of Biafra)였다. 그는 영국에서 디아스포라로 이주하여 정착한 이보족에게 비아프라 독립을 주창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 대항하기 위해 비아프라인이 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누는 “우리는 총과 총알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나이지리아 정부는 그의 행동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IPOB 대변인 아마라치 치메레메즈(Amarachi Chimeremeze)는 BBC와 인터뷰에서 카누가 주장한 ‘무장’은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5년 10월 카누가 나이지리아를 방문하였는데 곧바로 라고스의 호텔에서 체포되었다. 범죄 모의, 협박, 불법 조직의 구성원 등의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국가 반역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혐의는 나이지리아 정부가 조작한 것이었다.

   그가 체포된 이후에 그를 지지하는 이보족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나이지리아 당국은 이에 대해 강압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이 문제가 큰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식민 지배 유산과 함께 민족적, 종교적, 지역적 갈등이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국가다. 하나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포용과 융합 정책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나이지리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