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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 차별

12Oct/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17세기 중엽에 백인의 이주와 더불어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이 시작되었다. 1948년 아프리카너(Afrikaner)들이 중심이 된 국민당(National Party: NP)은 총선에서 간발의 차이로 승리한 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를 만들어냈다. 1994년 흑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정책이 철폐되었지만, 현재까지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아공 정부는 2009년 7월 6일 기존의 범죄전담부서인 ‘스콜피언스(Scorpions ; 전갈)’를 폐지하고, ‘매(Hawks)’로 알려진 우선범죄조사국(Directorate for Priority Crime Investigation : DPCI)을 창설하여, 조직화된 범죄, 부정부패, 경제 범죄 등 조직적인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1년 3월 28일 우선범죄조사국(Hawks)의 고위급 백인 수사관인 테론(Colonel Christian Theron)은 자신의 흑인 경호원인 멕쿠웨(Bulelani Mgcuwe)에게 인종차별적인 비방을 한 후 권리침해와 부정부패 혐의로 고소당하자, 차를 뇌물로 주면서 고소를 취하하게끔 하려 한 것이 알려졌다(“This province belongs to the white people” Cape Times, 2011.3.28, Jade Witten). 테론은 “이 지역은 백인의 소유“라며 으름장을 놓고 멕쿠웨를 “이 멍청한 원숭이(baboon : 아프리카, 아라비아에 분포하는 개코원숭이)”라고 하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각종 신문에 1면으로 기사화된 이 사건은 남아공에 거주하는 흑인들의 강한 반감을 샀다. 테론의 이러한 발언은 흑인과 백인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반증한 것이었다. 흑인인 멕쿠웨의 고소를 통해 흑인들의 인권을 찾고자 하는 노력과 이러한 실태를 고발하고자 하는 각종 미디어의 이슈화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힘이 늘어나고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남아공에서의 흑인과 백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이는 흑인들의 정치 영향력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민주동맹(Democratic Alliance)의 서거후보모임에서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이 흑인들의 정치적 영향이 컸던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40 Africans on DA Candidate list”, Cape Times, 28 March 2011, Babalo Nndenze). 흑인들의 교육이 더욱 확대되어 정부관료로서 중요한 위치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된다면, 다음 세대는 전처럼 핍박받던 흑인들의 시대가 아니라 백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점차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아공에서는 흑인들이 백인 식민지 지배자들에 의해 수많은 권리들을 박탈당했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 흑인들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위와 같이 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들이 있는 한, 앞으로 실질적인 백인과 흑인의 차이는 앞으로도 급격한 속도로 현저히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06168

“This province belongs to the white people”(By Jade Witten, Cape Times, March 28 2011)

http://www.capetimes.co.za/this-province-belongs-to-the-white-people-1.1048361?pageNumber=2

“40 Africans on DA candidate list” (By Babalo Nndenze, Cape Times, March 28 2011)

http://www.capetimes.co.za/40-africans-on-da-candidate-list-1.1048082

케냐 선거 이후 폭동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하)

12Oct/11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케냐의 2007년 대선은 키쿠유와 일부 루야 집단의 지지를 받는 PNU의 무와이 키바키와 루오와 칼렌진 세력을 중심으로 결집한 ODM의 라일라 오딩가 간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선거 전부터 여론 조사에서 밀리던 집권당은 실제 개표 결과 역시 불리하게 나오자 부정선거를 저지르면서 선거 이후 폭력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폭동 이후 전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의장이자 가나 대통령 존 쿠푸올(John Kufuor),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n) 등 아프리카 유력 정치지도자들의 중재로 PNU와 ODM은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내정을 총괄하는 수상직을 신설되고, 라일라 오딩가가 수상에 임명되었다. 또한 장관직 역시 ODM 출신 의원에게 배분되면서 케냐의 정치 상황은 안정을 찾아갔지만, 선거 이후 폭력은 케냐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선거 이후 폭동의 배후에는 선거 결과를 놓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막후 조종하여 민족집단 간의 폭력 사태로 내몬 정치인들이 있었다. 폭동 당시 PNU와 ODM 소속의 정치인들은 각자 세력의 청년 단체를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민족집단 간 갈등을 격화시켰다. 연립정부 구성이 마무리되자 케냐에는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된 폭력 사태를 부추긴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케냐 정부는 2008년 2월 ‘선거 이후 폭동에 대한 조사위원회’(The Commission of Inquiry on Post Election Violence)를 소집하여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수개월 간의 조사 결과가 정리된 보고서는 코피 아난을 거쳐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검사 루이스 모레노-오캄포(Luis Moreno-Okampo)에게로 전달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케냐의 선거 이후 폭동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이 사건에 연루된 6명을 기소했다. 이 6인 중에는 현재 케냐 정부 최고위 인사도 포함되었다. 칼렌진 출신의 윌리엄 사모에이 루토(William Samoei Ruto)는 케냐의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엘도렛(Eldoret)의 국회의원이다. 폭동 당시 엘도렛 지역에서 벌어진 PNU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조직 및 지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산업부 장관인 헨리 킾로노 코스게이(Henry Kiprono Kosgey)는 역시 칼렌진 출신 정치인으로서 폭동 당시 ODM 의장이었다. 현 정부의 부수상(Deputy Prime Minister)이자 재정부 장관인 우후루 케냐타는 폭동 당시 기쿠유 청년 조직 뭉기키(Mungiki)를 선동하여 ODM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밖에 ODM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데 경찰 조직을 이용한 혐의로 공공행정부 사무차관(Head of Public Service) 프란시스 키리미 무타우라(Francis Kirimi Muthaura)와 당시 경찰국장 모하메드 후세인 알리(Mohammed Hussein Ali)도 기소되었다. 또한 칼렌진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쿠유 집단에 대한 공격을 선동한 혐의로 방송진행자 조슈아 아랖 상(Joshua Arap Sang)도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기소된 6인에 포함되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는 기소된 여섯 사람에 대한 재판이 열릴만한 증거가 충분한 지를 검토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케냐 정계에서는 이 여섯 사람에 대한 재판을 자국의 사법부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부패한 케냐의 사법부가 유력 정치인에게 유죄를 선언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는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차기 정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다수 집단의 견고한 지지를 받는 피고 정치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권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 민족집단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이것이 폭력 사태로 이어진 예가 드물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삶터를 잃는 비극이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사라지기 위해서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인은 법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이번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케냐의 선거 이후 폭동 사건 배후의의 정치인들을 엄중히 처벌한다면 아프리카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케냐 실링(Shilling)화 가치 하락

12Oct/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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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최근 케냐 실링화의 가치는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 케냐중앙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0월11일자 환율이 미화 1달러당 107실링을 기록함으로써 케냐 실링의 가치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링화의 가치가 올해에만 25% 정도의 하락하면서 케냐의 서민들은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케냐는 내년에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새로 제정된 헌법에 의하면 선거는 7~8월에 치러질 예정이지만, 국회는 선거를 12월로 연기할 수도 있다. 물가상승으로 고통 받는 케냐인들은 조기에 선거를 치름으로써 경제 위기를 초래한 정치권에 대한 심판을 내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임기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선거를 12월로 연기하고자 한다.

    현 국회의원들은 12월 선거 연기론의 핑계로 이번 국회가 케냐실링 안정화에 온 힘을 다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 정책의 실패로 위기를 자초한 정치인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자신들의 재임기간을 몇 달 연장하겠다고 하니 케냐인들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출처: http://www.nation.co.ke/oped/Cartoon/-/454986/454986/-/156q6i6z/-/index.html

케냐 선거 이후 폭동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상)

12Oct/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2007년 연말부터 2008년 연초까지 이어진 케냐의 선거 이후 폭동(Post Election Violence)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여겨지던 케냐의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당시 냔자주(Nyanza Province), 리프트밸리주(Rift Valley Province), 센트럴주(Central Province), 수도 나이로비의 슬럼 등지를 중심으로 격화된 민족집단 간 충돌로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600,000명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7년 12월27에 있었던 총선 및 대선의 개표에서 대선 후보별 득표수 발표가 집계 상의 오류를 이유로 중단된 후, 갑자기 선거관리위원회가 현 대통령 무와이 키바키(Mwai Kibaki)의 당선을 선포한 것이었다. 득표수 발표가 중단되기 전까지 대선 후보 중 선두를 달리던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는 즉각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선거 결과 불복을 선언하면서, 선거 이후 케냐 정국은 극심한 불안에 빠졌다.

   선거 직후에는 라일라 오딩가의 출신 민족집단인 루오(Luo) 사회의 반발이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루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키수무(Kisumu)와 나이로비 슬럼 지역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하여 100여 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격화된 폭동의 불길은 리프드밸리주로 번졌는데, 이 지역의 기쿠유(Gikuyu) 민족집단 출신 이주민들이 폭력에 희생되었다. 또한 나쿠루(Nakuru), 나이바샤(Naivasha) 등 기쿠유 집단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에서는 루오나 칼렌진(Kalenjin) 집단이 공격을 받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벌어진 민족집단 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케냐의 정치 세력들이 민족집단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케냐의 주요 대통령 후보로는 재선을 노리는 현 대통령 무와이 키바키, ODM(Orange Democratic Movement, 오렌지민주주의운동)의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 ODM-Kenya의 칼론조 무시오카(Kalonzo Musioka) 등이었다.

   키바키는 재선을 준비하기 위해 PNU(Party of National Union, 민족동맹당)를 조직했다. PNU는 센트럴주의 기쿠유 사회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DP(Democratic Party, 민주당), 과거 집권 세력이자 초대 대통령 아들인 기쿠유 출신의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가 이끄는 KANU(Kenya African National Union, 케냐아프리카민족동맹), 케냐 서부 루야(Luyia) 민족집단의 지지를 받은 FORD-K(the Forum for the Restoration of Democracy-Kenya,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포럼)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당 후보인 오딩가와 무시오카는 2002년 선거 당시 키바키와 야당 연맹을 구성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키바키 대통령이 권력 분산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을 방해하자 이에 반발하여 당시 집권당 NARC에서 탈당하여 ODM을 조직하였다. ODM은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찬반투표에서 키바키 추종 세력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ODM은 2007년 선거를 대비하여 왔으나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 ODM의 경선을 통해서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음을 감지한 무시오카는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출마를 감행했다.

   ODM의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오딩가는 케냐에서 세 번째로 큰 민족집단인 루오 사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ODM은 소위 ‘펜타곤’(Pentagon)이라 불리는 다섯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집단 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정당이었다. 오딩가 이외에 전 부통령이었던 루야 출신의 무살리아 무다바디(Musalia Mudavadi), 칼렌진 출신의 윌리엄 루토(William Ruto), 엠부 출신의 조 냐가(Joe Nyaga), 동부 해안 지역 무슬림 출신의 나지브 발랄라(Najib Balala) 등은 각각 견고한 지지 기반을 보유한 정치지도자 들이었다. 오딩가는 그의 전통적인 기반인 루오 사회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펜타곤 지도자들의 지지 세력을 흡수했고, 키바키 정권의 실정에 염증을 느끼고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 계층의 호응을 얻으면서 2007년 대선에서 키바키를 위협했다. (계속)


짐바브웨, 민주적 선거 가능할까?

12Oct/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현대사회에서 국민들의 의사를 가장 잘 표명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선거이다. 따라서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며, 그렇기에 선거 절차 역시도 평등, 자유, 비밀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적인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정치 상황에서는 자유로운 선거 분위기, 공평한 선거 절차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과거 우리나라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선거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정한 절차로 이루어진 선거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해칠 위험이 있다.

   2008년 이루어진 짐바브웨의 대통령 선거는 폭력과 탄압의 선거였다는 점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3.15 부정선거를 보는 듯했다. 짐바브웨의 선거는 1차 투표와 2차 결선 투표로 이루어졌는데, 1차 투표의 결과 로버트 무가베(Robert Mugabe) 후보와 모건 츠방기라이(Morgan Richard Tsvangirai) 후보가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츠방기라이 후보는 결선 투표가 진행되기 전에 사퇴를 표명했는데, 그 배후 원인이 츠방기라이 지지자들에 대한 무가베의 무자비한 탄압과 폭력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무가베는 선거 기간 동안 츠방기라이를 지지하는 이들을 탄압하였고, 그를 다섯 차례나 구금하였으며, 그가 속해 있던 민주주의적 변화를 위한 운동(Movement for Democratic Change : MDC) 당의 사무총장인 텐다이 비티(Tendai Biti)를 국가반역죄로 체포하기까지하였다. 선거 이후, 부정한 폭력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를 의식한 무가베는 권력 분점 협상을 통해 야당과 권력을 나누기로 합의하였으나, 이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비민주적인 선거로 국제적 비난을 받던 짐바브웨는 이제 2011년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된다. 비록 과거의 선거는 비민주적이며 폭력적인 오점으로 얼룩졌지만, 짐바브웨인들이 다가오는 선거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그들은 전 세계가 이번 선거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지켜봐주기를 원하며 특히, 주변국인 남아공,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 : SADC), 아프리카연합(AU), 그리고 UN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평화로운 선거가 되도록 직접적으로 개입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짐바브웨에서는 정부가 제대로 정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부정부패가 끊이질 않고, 정당한 선거에 대한 법적, 제도적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민주적인 선거를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지만 선거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짐바브웨의 정치 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비관론도 설득력있게 회자되고 있다. 실제로 선거가 올바른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승자독식’의 정치 분위기는 여전히 문제이다. 짐바브웨에서는 선거에서 승리한 당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어 여야 간 권력 균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 정부 관계자는 “권력 분점 협상 이후에 인권 유린 현상이 없고, 법에 의해 인권이 보호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정치적 폭력은 아직도 짐바브웨에서는 심각한 문제”라며 평화적 선거자체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관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점점 더 많은 수의 짐바브웨인들이 자국의 문제점을 깨닫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과거 3.15 부정선거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스스로 4.19혁명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킨 것처럼 짐바브웨인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도 조만간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http://www.zimonline.co.za/Article.aspx?ArticleId=6601

http://mg.co.za/article/2011-03-23-call-for-intervention-in-zimbabwe/

http://www.newsday.co.zw/article/2011-03-04-zim-polls-need-international-monitors-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