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선거 이후 폭동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케냐의 2007년 대선은 키쿠유와 일부 루야 집단의 지지를 받는 PNU의 무와이 키바키와 루오와 칼렌진 세력을 중심으로 결집한 ODM의 라일라 오딩가 간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선거 전부터 여론 조사에서 밀리던 집권당은 실제 개표 결과 역시 불리하게 나오자 부정선거를 저지르면서 선거 이후 폭력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

   폭동 이후 전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의장이자 가나 대통령 존 쿠푸올(John Kufuor),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Kofi Annan) 등 아프리카 유력 정치지도자들의 중재로 PNU와 ODM은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내정을 총괄하는 수상직을 신설되고, 라일라 오딩가가 수상에 임명되었다. 또한 장관직 역시 ODM 출신 의원에게 배분되면서 케냐의 정치 상황은 안정을 찾아갔지만, 선거 이후 폭력은 케냐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선거 이후 폭동의 배후에는 선거 결과를 놓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막후 조종하여 민족집단 간의 폭력 사태로 내몬 정치인들이 있었다. 폭동 당시 PNU와 ODM 소속의 정치인들은 각자 세력의 청년 단체를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민족집단 간 갈등을 격화시켰다. 연립정부 구성이 마무리되자 케냐에는 수많은 희생자와 난민이 발생된 폭력 사태를 부추긴 정치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에 케냐 정부는 2008년 2월 ‘선거 이후 폭동에 대한 조사위원회’(The Commission of Inquiry on Post Election Violence)를 소집하여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했다. 이후 수개월 간의 조사 결과가 정리된 보고서는 코피 아난을 거쳐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의 검사 루이스 모레노-오캄포(Luis Moreno-Okampo)에게로 전달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케냐의 선거 이후 폭동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이 사건에 연루된 6명을 기소했다. 이 6인 중에는 현재 케냐 정부 최고위 인사도 포함되었다. 칼렌진 출신의 윌리엄 사모에이 루토(William Samoei Ruto)는 케냐의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엘도렛(Eldoret)의 국회의원이다. 폭동 당시 엘도렛 지역에서 벌어진 PNU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조직 및 지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산업부 장관인 헨리 킾로노 코스게이(Henry Kiprono Kosgey)는 역시 칼렌진 출신 정치인으로서 폭동 당시 ODM 의장이었다. 현 정부의 부수상(Deputy Prime Minister)이자 재정부 장관인 우후루 케냐타는 폭동 당시 기쿠유 청년 조직 뭉기키(Mungiki)를 선동하여 ODM 지지자들에 대한 공격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밖에 ODM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데 경찰 조직을 이용한 혐의로 공공행정부 사무차관(Head of Public Service) 프란시스 키리미 무타우라(Francis Kirimi Muthaura)와 당시 경찰국장 모하메드 후세인 알리(Mohammed Hussein Ali)도 기소되었다. 또한 칼렌진어 라디오 방송을 통해 기쿠유 집단에 대한 공격을 선동한 혐의로 방송진행자 조슈아 아랖 상(Joshua Arap Sang)도 국제형사재판소에 의해 기소된 6인에 포함되었다.

   현재 국제형사재판소는 기소된 여섯 사람에 대한 재판이 열릴만한 증거가 충분한 지를 검토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케냐 정계에서는 이 여섯 사람에 대한 재판을 자국의 사법부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부패한 케냐의 사법부가 유력 정치인에게 유죄를 선언한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에는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차기 정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다수 집단의 견고한 지지를 받는 피고 정치인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권 야욕을 실현시키기 위해 민족집단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이것이 폭력 사태로 이어진 예가 드물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삶터를 잃는 비극이 앞으로 아프리카에서 사라지기 위해서는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인은 법에 의해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 이번에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케냐의 선거 이후 폭동 사건 배후의의 정치인들을 엄중히 처벌한다면 아프리카 사회가 한 단계 성숙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