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2007년 연말부터 2008년 연초까지 이어진 케냐의 선거 이후 폭동(Post Election Violence)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여겨지던 케냐의 이미지를 일거에 무너뜨린 사건이었다. 당시 냔자주(Nyanza Province), 리프트밸리주(Rift Valley Province), 센트럴주(Central Province), 수도 나이로비의 슬럼 등지를 중심으로 격화된 민족집단 간 충돌로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600,000명 이상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07년 12월27에 있었던 총선 및 대선의 개표에서 대선 후보별 득표수 발표가 집계 상의 오류를 이유로 중단된 후, 갑자기 선거관리위원회가 현 대통령 무와이 키바키(Mwai Kibaki)의 당선을 선포한 것이었다. 득표수 발표가 중단되기 전까지 대선 후보 중 선두를 달리던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는 즉각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선거 결과 불복을 선언하면서, 선거 이후 케냐 정국은 극심한 불안에 빠졌다.
선거 직후에는 라일라 오딩가의 출신 민족집단인 루오(Luo) 사회의 반발이 폭력으로 표출되었다. 루오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키수무(Kisumu)와 나이로비 슬럼 지역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하여 100여 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격화된 폭동의 불길은 리프드밸리주로 번졌는데, 이 지역의 기쿠유(Gikuyu) 민족집단 출신 이주민들이 폭력에 희생되었다. 또한 나쿠루(Nakuru), 나이바샤(Naivasha) 등 기쿠유 집단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에서는 루오나 칼렌진(Kalenjin) 집단이 공격을 받았다.
선거 결과를 놓고 벌어진 민족집단 간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케냐의 정치 세력들이 민족집단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케냐의 주요 대통령 후보로는 재선을 노리는 현 대통령 무와이 키바키, ODM(Orange Democratic Movement, 오렌지민주주의운동)의 라일라 오딩가(Raila Odinga), ODM-Kenya의 칼론조 무시오카(Kalonzo Musioka) 등이었다.
키바키는 재선을 준비하기 위해 PNU(Party of National Union, 민족동맹당)를 조직했다. PNU는 센트럴주의 기쿠유 사회를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DP(Democratic Party, 민주당), 과거 집권 세력이자 초대 대통령 아들인 기쿠유 출신의 우후루 케냐타(Uhuru Kenyatta)가 이끄는 KANU(Kenya African National Union, 케냐아프리카민족동맹), 케냐 서부 루야(Luyia) 민족집단의 지지를 받은 FORD-K(the Forum for the Restoration of Democracy-Kenya,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포럼)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당 후보인 오딩가와 무시오카는 2002년 선거 당시 키바키와 야당 연맹을 구성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키바키 대통령이 권력 분산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을 방해하자 이에 반발하여 당시 집권당 NARC에서 탈당하여 ODM을 조직하였다. ODM은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찬반투표에서 키바키 추종 세력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ODM은 2007년 선거를 대비하여 왔으나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다. ODM의 경선을 통해서는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음을 감지한 무시오카는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독자출마를 감행했다.
ODM의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오딩가는 케냐에서 세 번째로 큰 민족집단인 루오 사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ODM은 소위 ‘펜타곤’(Pentagon)이라 불리는 다섯 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집단 지도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정당이었다. 오딩가 이외에 전 부통령이었던 루야 출신의 무살리아 무다바디(Musalia Mudavadi), 칼렌진 출신의 윌리엄 루토(William Ruto), 엠부 출신의 조 냐가(Joe Nyaga), 동부 해안 지역 무슬림 출신의 나지브 발랄라(Najib Balala) 등은 각각 견고한 지지 기반을 보유한 정치지도자 들이었다. 오딩가는 그의 전통적인 기반인 루오 사회의 지지를 유지하면서 펜타곤 지도자들의 지지 세력을 흡수했고, 키바키 정권의 실정에 염증을 느끼고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 계층의 호응을 얻으면서 2007년 대선에서 키바키를 위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