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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 쿠데타에서 나타난 대통령의 리더십

28Apr/12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1960년 6월 프랑스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말리는 1968년과 1991년 두 차례의 쿠데타를 경험한 후 1992년 자유민주주의 선거를 통해서 코나레(Alpha Oumar Konaré)를 민선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말리뿐만 아니라 알제리, 니제르 등 이웃 국가들의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이번 쿠데타로 실권한 투레(Amadou Toumani Touré)는 23년간 독재정치를 해온 트라오레(Moussa Traoré) 정권을 쿠데타를 통해 무너트렸지만, 어떠한 권력도 취하지 않고 코나레의 민선정부를 출범시킨 일등 공신이다. 그리고 2002년 퇴역한 후, 2007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제 2대 민선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4월 29일 선거를 앞두고 정권이 군부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헛될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는 1965년에서 1975년 사이에 정치발전의 한 과정처럼 간주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쿠데타를 통해서 제대로 된 정치 및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었다. 그렇다고 쿠데타를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정화를 이룬 것 또한 아니다. 당시의 쿠데타는 냉전의 진영패권에 의해서 묵인되었을 뿐 아프리카 정치발전을 위한 과정은 결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쿠데타를 통한 권력쟁취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쿠데타의 위험은 여전히 잔존해있다. 하지만 쿠데타를 통한 집권은 시민사회의 발달로 적지 않은 저항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질서에도 어굿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정치, 경제적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 만큼 쿠데타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는 국민의 수동적 의식이 점차 적극적인 시민 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말리의 쿠데타는 지난 23일(3월) 아프리카연합(UA), CEDEAO, 알제리, 모리타니, 니제르, 미국, 프랑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미 말리와 양자협력 관계를 단절했고, 워싱톤, 세계은행, 아프리카 개발은행은 원조를 동결시켰다.

   이번 말리의 사태는 전적으로 투레의 정치적 무능함에서 비롯되었다. 투레는 마그레브에서 활동하는 아크미(Aqmi, Al Qaïda au Maghreb islamique)라는 알카이다 살라피스트들이 말리에서 터전을 잡고 있음에도 오랫동안 이를 방치하였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권위는 투아레그반군들에 의해서 오래전부터 인정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붕괴 이후, 말리 북쪽지역은 말리 정부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자 말리출신의 리비아군 수백 명이 중무장한 체 말리 국경을 넘어 머물고 있었지만, 말리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 1월 말리 북서부 지역에서 80여 명의 말리군인이 사망한 참사에 대해서 투레 대통령은 아크미를 원론적으로 비판하면서 이들과의 평화적인 협상만을 되풀이 주장하였을 뿐이다. 3월 이후, 말리의 혼란을 틈타 아크미와 연계된 투아레그 반군들은 더욱 강하게 독립을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번 말리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정권쟁취라기 보다는 반군과 테러집단의 공격으로부터 군으로서의 역할과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을 정도의 정부의 미흡한 조치에 대한 불만이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제는 ‘협의’이다. 하지만 협의는 협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권한 투레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과신(過信)하지 않았는가? 이번 말리 쿠데타는 민주주의에서도 웨버가 주장하는 사자와 같은 용맹함과 여우와 같은 지혜를 가진 리더십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세네갈의 민주주의 위기

19Feb/12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세네갈은 독재와 군부정권이 횡행하던 1980년대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다당제 -비록 제한적이지만 – 실시, 그리고 2000년 야당인 현 대통령 와드(Wade)의 선거승리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해 아프리카 민주화의 희망을 아프리카와 전(全)세계에 전한 국가이다. 특히 야당세력들은 Sopi 연합을 통해서 단일 후보를 내세워 독재자 디우프를 권자에서 끌어내린 평화적인 시민혁명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대통령 임기 7년(1회 연임 가능)을 5년(1회 연임 가능) 단축하는 헌법을 2001년 개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작금의 세네갈은 민주주의 체제로의 완전한 이전이 아닌 역사의 흐름에 거꾸로 가고 있어 주변국가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011년 6월 23일을 시작으로 매월 23일과 27일에는 반(反)정부 시위가 끊이지 않다(2011년 11월 19일 기고문 참조). 그러나 세네갈 정부는 와드 대통령을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2월 26일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내세웠다. 현재 와드가 34.85%, 야당후보 맥키 살(Macky Sall)이 26.57%의 득표결과가 공표되었지만 선거가 끝난 지 4일이 되었어도 세네갈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다. 더욱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은 선거결과는 공정성을 위해서 정부가 아닌 중립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서 발표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대통령이며 후보인 와드가 직접 2차 투표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세네갈 국민으로부터 노여움을 더 사고 있다.

   현 대통령 와드가 세네갈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은 이미 국민의 반대로 철회된 부통령제 신설이 아닌 헌법조항에 대한 권력자의 임의적 해석과 불합리한 적용이었다. 2000년 대야권 세력과 국민의 신임으로 당선된 와드는 대통령 임기를 제한하는 헌법 개정을 통해서 민주화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와드는 2007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놀랍게도 과반수가 넘는 55.9%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눈이 먼 와드는 2001년 개정된 헌법은 2007년 선거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 즉 2001년의 대통령 임기 개정은 2000년부터가 아닌 2007년부터 적용된다는 유권 해석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이다. 물론 이번 1차 선거에서 획득한 34.8%의 득표율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07년 와드가 획득한 56%에 비해서는 매우 저조한 것이다. 특히 2009년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세네갈민주당(PDS, Partis democratique senegalais)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는 장기집권을 노리는 와드에게 헌법의 ‘임의적 해석’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와드를 지지했던 대부분의 세네갈 엘리트들은 현재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다. 특히 세네갈 인구의 47%를 차지하는 청년들(15세 미만)이 실업문제로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7년 자신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던 이슬람 세력을 국가의 종교적 중립을 내세워 소홀히 한 것이 3월 18일에 실시되는 2차 투표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재 세네갈의 진정한 민주사회로의 되돌림은 야당 후보들의 단일화의 성공여부일 것이다. 1차 투표에서 와드 대통령과 야당 후보 등 총 13명이 출마하였다. 2000년 와드를 밀어주었던 Sopi운동과 같이 ‘M23(mouvement du 23)’ 슬로건을 통해 맥키 살을 중심으로 하는 야권후보 단일화운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2000년의 경우처럼 국민들이 과연 얼마만큼 정치인들을 신뢰할 것인가는 2차 투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야당세력의 승리로 대통령 선거가 끝난다 하더라도 신정부가 와드 정부의 전철을 따를 수 있다는 국민들의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는 대폭적인 혁신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

19Feb/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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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2000년 이후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전방위적 경제외교를 실시하고 있어, 아프리카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등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엘리트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의 유지와 연장을 위해서 중장기적이고 구체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경제계획 없이 여전히 중국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의지는 가난한 일반서민들에게 돌아가는 혜택보다는 더 힘든 고난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에 대한 아프리카의 위험한 줄타기

19Feb/12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2000년대 들어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주요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 확산을 통해서 투자유입과 무역시장의 다원화를 모색하였다. 특히 중국은 일본을 제치고 아시아국가들 중에서 아프리카가 가장 선호하는 국가가 되었다. 아프리카 시장에 들어선 지 겨우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 중국의 아프리카 시장의 점유율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유럽을 제치고 놀랄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석유와 같은 주요 자원의 보유와 상관없이 중국과 경제협력을 가지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오성홍기’는 아프리카 곳곳에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환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붉은식민주의(Red-colonialism)‘ 혹은 포스트 식민주의의 위험을 경계하기도 한다. 2000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대규모 중-아포럼(Focac: Forum Chine-Afrique)은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민주화를 담보로 경제원조 정책을 실시하는 서구국가들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으로 엄청난 경제원조와 외채탕감의 혜택을 받았으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인프라(도로와 철도, 항만, 교육시설, 공공건물 등)에 대한 투자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지금의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하여 많은 아프리카인들의 시각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가장 큰 이유는 실질적인 기술 이전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비교적 품질의 좋은 유럽 상품에 -비록 가격이 중국 상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싼지만- 익숙한 아프리카인들은 저품질의 중국산 상품에 대한 불신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아프리카 간의 무역불균형을 들고 있다. 특히 중국이 아프리카로부터 수입하는 80%가 석유인데, 이는 아프리카 전체의 불균형적인 발전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 석유수입 지역인 서아프리카를 제외하고는 무역수지가 전반적으로 불균형이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체제에서 한 국가가 필요로 하는 부분에 집중 투자하여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국이 아프리카에 투자하고 있는 각종 사업이 아프리카 국내경제, 특히 서민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 못하고 있어 아프리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은 현지에서 아프리카 기술자와 노동자를 채용하기보다는 자국민들을 불러들여 건설 사업에 참여시키고 있어 지역발전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지도자들에게 중국은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에서 중국만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보유한 다양한 자원들은 고갈되지 않고 무궁무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국의 이러한 경제력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중장기적인 경제발전 계획이 절실하다. 현재 아프리카인들은 ‘니하우마’라고 인사하고 있지만, 내일은 ‘나마스떼(namaste),’ 모레는 ‘봉 지아(Bom dia)’라고 인사하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중국이 향후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세계 경제 불황으로부터 아프리카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진정한 파트너인가를 장고(長考)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3선을 꿈꾸는 세네갈 대통령과 민주주의로의 이행

26Dec/11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세네갈은 민주주의가 비교적 안정되게 정착한 국가로 알려져 왔다. 초대 대통령 셍고르(Léopold Sédar Senghor)는 1980년 20년간의 장기권력을 스스로 양도함으로써 아프리카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평화적 정권교체를 최초로 성공시켰다. 또한 셍고르의 권력을 이양 받은 압두 디우프(Abdou Diouf)는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제 1 야당 지도자, 압둘라이 와드(Abdoulaye Wade)에게 패하였다. 그러나 그는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세네갈의 민주역사에 오점을 만들고 있는 것은 공교롭게도 세네갈을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할 수 있게 만든 야당 출신 현 대통령 와드다.

   2011년 6월 22일 정부는 야당과 시민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헌법개정안을 법사위를 통해 통과시켰다. 이 헌법 개정의 주요 사안은 현행 헌법상 의무 규정인 1차 투표에서의 50%의 지지율을 25%만 얻어도 당선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12년 2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서 현 대통령의 재선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정치술수로 국민들의 분노를 유발시켰다. 또한 에너지부 장관인 아들 카림 와드를 헌법개정으로 신설될 부통령직에 임명하여 아들에게 정권을 승계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이 야권세력의 주장이다.

   결국, 2011년 6월 23일과 27일 수도 다카르(Dakar)에서 수 천 명의 시민(특히 청소년)들은 “내 헌법을 건들지 말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국회, 내무부, 독립광장 등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사당 건물의 일부가 방화되고, 시위대의 몇몇은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또한 수 천 명이 부상당하는 초유의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된다.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서 7월 와드 대통령은 대 국민담화를 통해서 헌법 개정의 취소, 5만 명의 청년 일자리 창출, 전력공급의 안정화 등 ‘믿지 못할’ 약속을 하였지만, 매월 27일이면 세네갈 수도 다카는 화약 냄새, 돌팔매, 방화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드 현 대통령은 3선의 욕망과 부통령직 신설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하지 않고 있다.

   과연, 세네갈은 현재와 같은 정치적 긴장과 국민과의 소통의 단절 속에서 2012년 대통령 선거를 맞이할 것인가? 막강한 조직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현 정부와 집권정당에 대항할 수 있는 세네갈인들의 민주주의 힘은 어디에서부터 나와야하는 가 ? 필자가 2011년 7월 현지에서 보고, 느낀 점으로는 세네갈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에 가장 중요한 걸림돌은 현 대통령과 효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단일 후보를 야권에서 내세우는 것이다. 단일후보를 위한 정지작업은 이미 7개월 전부터 35개의 야당세력들 간의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이해관계 조정의 실패로 현재는 여러 명의 후보가 대선에 등록하고 있어 정부와 현 집권정당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선거에 임박하여 야당 후보자들이 후보등록을 포기하고, 야권 단일 후보를 내세워 와드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막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야권 단일 후보가 성공하여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하여도, 지지 세력들에 대한 권력분점 문제는 향후 세네갈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이행에 중요한 행보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야권 단일 후보를 내세워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되는 장기집권을 종식시킨다면, 더디고 불안정하게 진행되고 있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주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