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쿠데타에서 나타난 대통령의 리더십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1960년 6월 프랑스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한 말리는 1968년과 1991년 두 차례의 쿠데타를 경험한 후 1992년 자유민주주의 선거를 통해서 코나레(Alpha Oumar Konaré)를 민선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말리뿐만 아니라 알제리, 니제르 등 이웃 국가들의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특히 이번 쿠데타로 실권한 투레(Amadou Toumani Touré)는 23년간 독재정치를 해온 트라오레(Moussa Traoré) 정권을 쿠데타를 통해 무너트렸지만, 어떠한 권력도 취하지 않고 코나레의 민선정부를 출범시킨 일등 공신이다. 그리고 2002년 퇴역한 후, 2007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서 제 2대 민선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4월 29일 선거를 앞두고 정권이 군부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헛될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쿠데타는 1965년에서 1975년 사이에 정치발전의 한 과정처럼 간주되었지만 불행하게도 쿠데타를 통해서 제대로 된 정치 및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는 없었다. 그렇다고 쿠데타를 완전히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안정화를 이룬 것 또한 아니다. 당시의 쿠데타는 냉전의 진영패권에 의해서 묵인되었을 뿐 아프리카 정치발전을 위한 과정은 결코 아니었다. 최근 들어 쿠데타를 통한 권력쟁취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쿠데타의 위험은 여전히 잔존해있다. 하지만 쿠데타를 통한 집권은 시민사회의 발달로 적지 않은 저항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질서에도 어굿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로부터 정치, 경제적 압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 만큼 쿠데타에 대해서 어쩔 수 없다는 국민의 수동적 의식이 점차 적극적인 시민 의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말리의 쿠데타는 지난 23일(3월) 아프리카연합(UA), CEDEAO, 알제리, 모리타니, 니제르, 미국, 프랑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미 말리와 양자협력 관계를 단절했고, 워싱톤, 세계은행, 아프리카 개발은행은 원조를 동결시켰다.

   이번 말리의 사태는 전적으로 투레의 정치적 무능함에서 비롯되었다. 투레는 마그레브에서 활동하는 아크미(Aqmi, Al Qaïda au Maghreb islamique)라는 알카이다 살라피스트들이 말리에서 터전을 잡고 있음에도 오랫동안 이를 방치하였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권위는 투아레그반군들에 의해서 오래전부터 인정되지 못하였다. 더욱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붕괴 이후, 말리 북쪽지역은 말리 정부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자 말리출신의 리비아군 수백 명이 중무장한 체 말리 국경을 넘어 머물고 있었지만, 말리 정부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지난 1월 말리 북서부 지역에서 80여 명의 말리군인이 사망한 참사에 대해서 투레 대통령은 아크미를 원론적으로 비판하면서 이들과의 평화적인 협상만을 되풀이 주장하였을 뿐이다. 3월 이후, 말리의 혼란을 틈타 아크미와 연계된 투아레그 반군들은 더욱 강하게 독립을 요구하면서 이를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이번 말리에서 일어난 쿠데타의 보다 근본적인 동기는 정권쟁취라기 보다는 반군과 테러집단의 공격으로부터 군으로서의 역할과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을 정도의 정부의 미흡한 조치에 대한 불만이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제는 ‘협의’이다. 하지만 협의는 협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을 때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실권한 투레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과신(過信)하지 않았는가? 이번 말리 쿠데타는 민주주의에서도 웨버가 주장하는 사자와 같은 용맹함과 여우와 같은 지혜를 가진 리더십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