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수단과 중국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근대 국가로서의 수단은 1899년에는 영국-이집트의 공동 통치체제가 수립되었다. 이후 1956년 수단이 영국-이집트의 공동체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선포했다. 그렇지만 수단남부는 그동안 영국에 의하여 장악되었기 때문에 북부의 이슬람체제와는 달리 기독교문화가 퍼지면서 남부수단 주민들은 토속문화와 기독교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언어도 북부수단에서는 아랍어가 널리 쓰였지만 남부에서는 영어가 널리 쓰였다. 이런 연유로 남부수단과 북부수단의 이질감을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이러한 상태의 수단이 2011년 7월 남부수단이 분리되어 주바를 수도로 하는 남수단공화국(The Republic of South Sudan)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북부 수단과 남부 수단사이에는 거대한 유전지대가 있어 독립을 선포하기 전에도 또 독립을 선포한 이후에도 석유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부수단에 유전의 80%가 있고 북부수단에는 석유 수출에 필요한 정제시설과 송유관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남북수단 간에는 다시 헤글리그 유전 관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은 남수단과 북수단에 있는 석유를 노리고 있다. 1960년대 일찍이 중국은 소련과의 관계악화로 인하여, 또 미국, 유럽 국가들의 1세계는 이념으로 인하여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은 아프리카에 중점적으로 외교관계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노력으로 인하여 중국은 제3세계의 수장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외교정책으로 중국은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중국에 의지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하여 막대한 광물자원과 석유의 필요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수단이 분리하기 전 작년에 중국은 양쪽 수단으로부터 하루 260,000배럴을 수입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수입량은 전체 수입량의 5%에 달한다. 그래서 중국은 수단에서 정치적 이념 즉 정치와 경제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은 남북수단문제에 어쩔 수없이 개입되고 있긴 하지만 중국은 철저히 남북수단 간의 등거리외교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류웨이민 외교부 대변인은 클리르 남수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앞서 2012년 4월 23일 “석유는 북수단과 남수단이 공유하는 경제적 생명선”이라고 말한 바 있고, 또 남수단이 2012년 4월 10일 헤글리그 지역의 주요 유전지대를 열흘간 장악하자 중국은 수단 국경지대에서 일어난 분쟁을 종식시킬 것을 공식 촉구한 바도 있다.

   이처럼 중국은 남북수단에 걸쳐 있는 석유를 가져오고자 등거리 외교를 펴면서 철저히 중국의 경제적 이익에 목적으로 하고 있다.


출처: 머니투데이 (2012년 4월 24일), 문화일보 (2012년 5월 12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2s325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