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by 이한규 HK연구교수

중국의 아프리카 토지 매입

18Ju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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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국의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경작 가능한 토지를 해외에서 매입한 것이 3천만 헥타르에 이른다. 중국은 살, 콩,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앙골라, 카메룬, 모잠비크, 우간다, 탄자니아, 짐바브웨에서 약 146만 헥타르의 토지를 매입하였다. 이와 같은 중국의 아프리카 토지 매입에 대해 일부는 프랑사프리크(Francafrique)를 빗대어 시나프리크(Chinafrique)라고 할 정도로 중국의 무분별한 아프리카 진출로 아프리카의 지속가능한 농촌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 만평에서 한 아프리카 여인이 토지가 자신들의 생명이고 삶의 전부라고 하자, 중국인은 태연스럽게 토지와 여인의 삶을 함께 사겠다고 한다. 이처럼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신식민주의가 신자유주의의 탈을 쓰고 아프리카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식량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http://lapolitiquedelenfantunique.blogspot.kr/2015/01/environnemental-terres-en-afrique.html

 

 

아프리카 전통문화 자원의 유출

15Apr/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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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대자연의 보고이면서도 많은 전통문화 자원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시장 경제의 본격적 침투와 물질문화의 확산으로 아프리카 전통문화 자원이 유출되고 있다. 경제 불황에다 전통문화 자원의 체계적인 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아프리카 상황으로 인해, 전통문화 자원이 암암리에 아프리카를 빠져나가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무조건적인 단속보다도 각 지방과 농촌에서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전통문화 보존에 필요한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즉 개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전통문화 자산을 국가 혹은 지방 정부 차원에서 관리할 수 있는 방법과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농촌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 자산의 가치가 암암리에 훼손되거나 유실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출처: https://teoros.revues.org/docannexe/image/1000/img-1.jpg

신정부 구성에 성공한 모로코

15Apr/17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전형적인 입헌 군주국이지만, 독립을 쟁취한 1956년부터 제한적인 다당제를 실시해 왔다. 그간 모로코에서는 30여 개의 군소 정당이 난립하여 정당 체제의 발칸화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정당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연립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이익 단체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인한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은 입헌 군주국 모로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하산 2세 왕은 1992년 9월 4일과 1996년 3월 3일 획기적인 헌법 개정을 단행하였다. 이 헌법의 주요 골자는 정부와 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총리는 내각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거쳐 하산 2세 왕을 이어받은 모하메드 6세는 2011년에 독립 이후 5번째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왕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던 수상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대표가 정부 수장이 되고, 내각 구성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모로코는 독립 이후 최초로 왕권과 정치권이 분리되는 권력 분립형 민주주의 체제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다. 또한 정당들은 다수 의석을 통해 정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왕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대표를 정부 수장, 즉 수상에 임명해야 한다.

   두 차례에 걸친 민주 헌법의 개정으로 의회의 권한이 보장되었지만, 국왕의 정치권력은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재 모로코 상황에서 그나마 국왕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의회뿐이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연정(聯政) 수립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가장 공정한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왕권에 대한 견제의 기대를 모았던 2011년 총선에서, 이슬람 중도보수주의 정의개발당(PJD, Parti de la justice et du développement)은 107석을 차지하며 다수당이 되었다. 헌법 제47조에 따라 정당 대표 압둘릴라흐 벤키란느(Abdelilah Benkirane)는 총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395석에서 107석밖에 차지하지 못해 다른 정당과 연립 정부의 구성에 겨우 합의하였다. 왕권에 도전적이지 않은 PJD는 다행히도 2016년 10월에 단행된 총선에서도 다수당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PJD는 이 총선에서도 과반수에서 72석이 모자라는 125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2011년에 이어 2016년에도 모로코의 정당 정치는 불안한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PJD는 PPS와 Iatoqlal와의 연정에 성공했지만, 15석이 모자라는 183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최소한 198석을 확보해야 한다).

   2016년 10월 총선 승리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벤키란느 총리는 국왕에 의해 해임되고, 같은 정당 지도자 사드-에딘느 알-오트마니(Saad-Eddine Al-Othmani)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알-오트마니는 6개 정당과의 합의로 395석 중 240석을 확보하는 연립 정부를 출범시킴으로써, 5개월간의 무정부 상태를 종식시키고, 39명의 장관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모로코 정당의 난립은 국민 이익을 통합적이고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데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원칙으로 하지만,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치 단체라는 점에서, 권력 쟁취보다는 국민 이익을 국왕 앞에서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당 난립 상태에서는 국민의 공동 이익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워 보인다. 5개의 다른 정당과의 연립을 통해 겨우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PJD는 향후 국정 협의를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지혜와 정책이 절실하다.

아프리카 무료 진료의 현실

17Feb/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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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아프리카 연합은 임신부와 5살 미만 아동의 무료 진료를 선언하였다. 무료 진료 정책은 다양한 전염병으로부터 임산부와 어린 아동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우선 목적이 있다. 이후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AU 보건 정책을 수용했지만, 대부분이 도시에서만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농촌의 무료 진료는 재정적인 문제와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 문제로 제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만평에서 한 의사가 병원 밖에서 환자를 진찰하고 있는 것은 의사가 본연의 의무, 즉 환자 치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역 전염병 상황, 무료 환자 현황 파악 및 환자 서류 구비, 진료 결과 보고서 작성 등 수많은 행정 업무에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재정적 문제로 전문 의료 사무직원을 별도로 채용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의 정부들이 임신부와 5살 미만 아동의 무료 진료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재정 확충, 즉 항공권, 해외 송금, 핸드폰에 대한 세금 부과 등을 통한 자구책이 절실해 보인다. 국제개발원조로 보건 인력 양성과 교육은 지속되겠지만, 이러한 인력을 유지하는 것은 해당 정부의 몫이 되어야 한다.

출처: https://www.oxfamfrance.org/sites/default/files/file_attachments/gratuite_idees_recues_fiche4.pdf

감비아 사태를 통해 본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공고화

17Feb/17

   1990년을 기점으로 아프리카가 민주화를 단행한 지 27년이 되었지만, 대통령 선거 이후의 아프리카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삼선 제한을 무시하고, 국민의 이름을 빙자하여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을 도모하였거나 도모하고 있다. 2010년 12월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대통령 선거로 국가 위기가 발생했다. 2017년 1월 감비아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 2016년 12월 1일 감비아 국민은 22년 동안 장기 집권한 당시 대통령 야흐야 자메(Yahya Jammeh) 대신 야당 지도자 아다마 바로우(Adama Barrow)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하였다. 감비아는 22년 만에 합법적인 선거 절차를 통해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가능해졌다. 야흐야 자메도 초기에는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그는 돌연 ‘부정 선거’라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특히, 있지도 않은 외국의 간섭을 빌미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야당 세력의 반정부 활동을 사전에 봉쇄하여 정권 연장을 획책하였다.

   유엔, 아프리카 연합(AU),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 미국 등은 야흐야 자메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였지만, 그는 거부하였다. 이는 2010년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사태 이후 안정적인 정국을 통해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ECOWAS 회원국들의 불안을 조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일부 회원국은 야흐야 자메 대통령의 망명을 받아주겠다며, 사태를 조기 수습하려고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당선자 아다마 바로우는 2017년 1월 21일 조국을 떠나 세네갈로 피신하여, 다카르에 있는 감비아 대사관에서 취임식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급기야 ECOWAS 1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군사적 행동을 할 것을 천명하였고, ECOWAS 연합군 명목으로 세네갈 군대가 감비아에 입성하는 사태까지 왔다. 패배를 승복하지 않았던 야흐야 자메는 망명길에 오르고, 아다마 바로우 당선자가 복귀함으로써 감비아 사태는 큰 유혈 충돌 없이 종결되었다.

   하지만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감비아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에서 정부를 독립적으로 견제·감독할 수 있는 제도의 완전한 정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권 교체의 바로미터인 선거를 관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과 공권력의 행사는 여·야당을 넘어서 모든 지도층이 존중하고 복종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대의를 중시하고, 민주주의의 대의는 지속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제도의 완전한 정착에 있다. 따라서 모든 갈등과 분쟁은 제도를 통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각 제도에는 국민에 대한 고유의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문제 해결에서 지역 공동체의 개입은 차선책이 되어야 한다. 감비아 사태가 현재는 큰 위기 없이 해결되었지만, 2백만 국민을 저버리고 세네갈로 황급히 피신한 당선자 아다마 바로우 행동은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