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전형적인 입헌 군주국이지만, 독립을 쟁취한 1956년부터 제한적인 다당제를 실시해 왔다. 그간 모로코에서는 30여 개의 군소 정당이 난립하여 정당 체제의 발칸화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정당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연립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이익 단체의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인한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은 입헌 군주국 모로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하산 2세 왕은 1992년 9월 4일과 1996년 3월 3일 획기적인 헌법 개정을 단행하였다. 이 헌법의 주요 골자는 정부와 의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총리는 내각 임명권과 의회 해산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를 거쳐 하산 2세 왕을 이어받은 모하메드 6세는 2011년에 독립 이후 5번째 헌법 개정을 단행했다. 왕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던 수상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대표가 정부 수장이 되고, 내각 구성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로써 모로코는 독립 이후 최초로 왕권과 정치권이 분리되는 권력 분립형 민주주의 체제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었다. 또한 정당들은 다수 의석을 통해 정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왕은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 대표를 정부 수장, 즉 수상에 임명해야 한다.
두 차례에 걸친 민주 헌법의 개정으로 의회의 권한이 보장되었지만, 국왕의 정치권력은 여전히 크다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현재 모로코 상황에서 그나마 국왕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의회뿐이다. 하지만 어느 정당도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해, 안정된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연정(聯政) 수립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가장 공정한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왕권에 대한 견제의 기대를 모았던 2011년 총선에서, 이슬람 중도보수주의 정의개발당(PJD, Parti de la justice et du développement)은 107석을 차지하며 다수당이 되었다. 헌법 제47조에 따라 정당 대표 압둘릴라흐 벤키란느(Abdelilah Benkirane)는 총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395석에서 107석밖에 차지하지 못해 다른 정당과 연립 정부의 구성에 겨우 합의하였다. 왕권에 도전적이지 않은 PJD는 다행히도 2016년 10월에 단행된 총선에서도 다수당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PJD는 이 총선에서도 과반수에서 72석이 모자라는 125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2011년에 이어 2016년에도 모로코의 정당 정치는 불안한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PJD는 PPS와 Iatoqlal와의 연정에 성공했지만, 15석이 모자라는 183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최소한 198석을 확보해야 한다).
2016년 10월 총선 승리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를 구성하지 못한 벤키란느 총리는 국왕에 의해 해임되고, 같은 정당 지도자 사드-에딘느 알-오트마니(Saad-Eddine Al-Othmani)가 신임 총리로 임명되었다. 알-오트마니는 6개 정당과의 합의로 395석 중 240석을 확보하는 연립 정부를 출범시킴으로써, 5개월간의 무정부 상태를 종식시키고, 39명의 장관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모로코 정당의 난립은 국민 이익을 통합적이고 효율적으로 반영하는 데 여전히 한계가 있어 보인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원칙으로 하지만, 정당은 국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치 단체라는 점에서, 권력 쟁취보다는 국민 이익을 국왕 앞에서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당 난립 상태에서는 국민의 공동 이익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워 보인다. 5개의 다른 정당과의 연립을 통해 겨우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PJD는 향후 국정 협의를 효과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지혜와 정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