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비아 사태를 통해 본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공고화

   1990년을 기점으로 아프리카가 민주화를 단행한 지 27년이 되었지만, 대통령 선거 이후의 아프리카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삼선 제한을 무시하고, 국민의 이름을 빙자하여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을 도모하였거나 도모하고 있다. 2010년 12월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대통령 선거로 국가 위기가 발생했다. 2017년 1월 감비아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 2016년 12월 1일 감비아 국민은 22년 동안 장기 집권한 당시 대통령 야흐야 자메(Yahya Jammeh) 대신 야당 지도자 아다마 바로우(Adama Barrow)를 차기 대통령으로 선택하였다. 감비아는 22년 만에 합법적인 선거 절차를 통해 민주적인 정권 교체가 가능해졌다. 야흐야 자메도 초기에는 패배를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그는 돌연 ‘부정 선거’라면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특히, 있지도 않은 외국의 간섭을 빌미로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야당 세력의 반정부 활동을 사전에 봉쇄하여 정권 연장을 획책하였다.

   유엔, 아프리카 연합(AU),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 미국 등은 야흐야 자메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였지만, 그는 거부하였다. 이는 2010년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사태 이후 안정적인 정국을 통해 경제발전을 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국가들, 특히 ECOWAS 회원국들의 불안을 조성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일부 회원국은 야흐야 자메 대통령의 망명을 받아주겠다며, 사태를 조기 수습하려고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당선자 아다마 바로우는 2017년 1월 21일 조국을 떠나 세네갈로 피신하여, 다카르에 있는 감비아 대사관에서 취임식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급기야 ECOWAS 1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연합군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군사적 행동을 할 것을 천명하였고, ECOWAS 연합군 명목으로 세네갈 군대가 감비아에 입성하는 사태까지 왔다. 패배를 승복하지 않았던 야흐야 자메는 망명길에 오르고, 아다마 바로우 당선자가 복귀함으로써 감비아 사태는 큰 유혈 충돌 없이 종결되었다.

   하지만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감비아 사태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에서 정부를 독립적으로 견제·감독할 수 있는 제도의 완전한 정착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정권 교체의 바로미터인 선거를 관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할과 공권력의 행사는 여·야당을 넘어서 모든 지도층이 존중하고 복종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대의를 중시하고, 민주주의의 대의는 지속할 수 있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제도의 완전한 정착에 있다. 따라서 모든 갈등과 분쟁은 제도를 통해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각 제도에는 국민에 대한 고유의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문제 해결에서 지역 공동체의 개입은 차선책이 되어야 한다. 감비아 사태가 현재는 큰 위기 없이 해결되었지만, 2백만 국민을 저버리고 세네갈로 황급히 피신한 당선자 아다마 바로우 행동은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