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내전과 극단 이슬람 세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프랑스는 2013년 1월 서아프리카에 있는 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에 전격 개입을 했고 이 결과 프랑스는 이슬람세력에게 빼앗겼던 말리영토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프랑스의 개입으로 이슬람세력에 의한 테러는 계속되고 있다. 말리내전의 원인과 프랑스의 말리 개입에 대한 파장이 고찰된다.

   말리의 주요 부족은 만딩고족 50%, 풀라니족 17%, 볼타익족, 투아레그족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를 도왔던 투아레그족과 이슬람세력이 리비아 카다피 정권의 붕괴이후 말리로 도피했다. 말리로 들어온 투아레그족과 알카에다 단체가 손을 잡으면서 ‘안사르 디네’라는 투아레그족 출신 이슬람주의 과격단체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이후 2012년 4월 ‘아자와드 해방운동(MNLA)’을 조직한다. ‘아와자드 민족해방운동’은 말리의 3분의 2를 통치한다.

   한편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AQIM)도 말리로 들어왔다.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AQIM: AL-Qaeda in the Islamic Maghreb)의 전신은 1992년 알제리에서 집권이 유력하던 ‘이슬람 구구전선’이 총선에서 배제당한 뒤 테러조직으로 변신한 ‘살라피스트 그룹(SGPC)’이다. 말리로 숨어든 살라피스트 그룹은 2007년 아카에다와 손잡으면서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로 변신했다.

   이후 알카에다 북아프리카 지부를 비록한 근본주의 이슬람 단체들이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MNLA)을 몰아 내었다. 이러한 결과로 아자와드 민족해방운동이 다스렸던 지역은 서아프리카 지하드 통일운동을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에 의해 통치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엄격한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그들이 장악한 지역에서 적용하였다. 즉 그들은 절도범에게 손목을 잘랐고, 또 그들은 불륜을 저지른 연인들을 투석형으로 다스렸다. 또 그들은 음악을 금지시켰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팀북투 진흑사원 유적들도 ‘우상’으로 간주되면서 모두 파괴되었다. 이슬람 세력은 말리 절반인 북부를 이후 9개월 동안 이슬람법으로 통치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이슬람 세력은 말리의 북부 장악 후 말리 남쪽으로 진격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말리 트라오레 정부는 전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2013년 1월 11일 군대를 파견하여 이슬람 세력을 박멸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군은 이슬람 세력이 장악한 말리 북부를 폭격을 하면서 이슬람 세력을 압박하였다. 이후 프랑스 군대와 말리 정부군은 약 3주 만에 말리 북부를 장악하였다. 현재 이슬람 세력은 프랑스의 화력에 굴복하면서 뿔뿔이 흩어졌고, 산발적으로 프랑스 군대와 말리 군대에 저항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북부아프리카에 산재하고 있는 이슬람세력은 프랑스에 반감을 가지면서 프랑스를 도와준 북부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대 테러 전쟁을 선포했다. 실례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프랑스군이 말리 북부를 장악하도록 알제리 공군기지를 제공한 알제리에서 테러를 자행을 하였다. 즉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동부 인아메나스에 있는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석유가스 개발 현장을 습격하였다. 또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은 프랑스가 이슬람을 공격하였기 때문에 프랑스 본토에 대한 테러 공격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다.

이처럼 말리 내전의 결과는 프랑스가 이슬람세력을 건드렸기에 북아프리카에서 테러가 빈번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최근 프랑스 정부는 이후 흐랑스군 1,000명을 말리에 상주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프랑스의 행동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이슬람 세력을 더욱 자극 시킬 것이다.

이에 우리 한국인들은 북아프리카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의 안전에 주의를 하여야 할 것이다.


출저

Reuters (2013년 4월 8일)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world/war/mali.htm

http://africasacountry.com/2013/01/14/france-in-mali-the-end-of-fairyta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