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by 관리자

아프리카의 리카싱은 누구?

19Sep/13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경제나 시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카싱’(Li Ka Shing) 혹은 리자청(李嘉誠)이라고 불리는 사람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리카싱은 1928년에 출생한 중화권 사업가이다. 그는 자수성가하였으며 현재 허치슨 왐포아(Hutchison Wampoa)와 청콩그룹 (Cheung Kong Holdings)의 회장이다. 포브스가 세계부자순위를 매년 조사하는데 리카싱은 9위를 차지했다. 리카싱의 재산은 대략 255억 달러, 즉 한화로 약 30조원으로 추정된다. 아시아인이 10위 이내로 진입한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리카싱은 아시아에서 최고부자이다.

   아프리카에서의 ‘리카싱’은 누구일까? 바로 알리코 단고테(Aliko Dangote)이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최고재벌인 단고테는 포보스에서 실시한 세계부자순위에서 76위를 차지했다. 그의 재산은 120억 달러로 추정된다. 한화로 대략 13조원이다. 그는 55세의 나이지리아 카노 (Kano)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며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단고테 그룹(Dangote Group)의 경영자이다. 단고테 그룹은 제분업, 제당업, 화물업, 은행업, 석유업, 섬유업 그리고 시멘트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모국인 나이지리아는 물론 베넹, 카메룬, 가나, 남아공, 잠비아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단고테는 아프리카 20세기 초의 전설적인 무역가 알하산 단타타(Alhassan Dantata)의 손자라는 것이다. 알하산 단타타는 콜라 열매를 주로 거래했으며 그가 1955년에 죽기 전까지 그는 아프리카의 최고 부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단고테는 할아버지인 알하산 단타타의 재산을 물려받지 않은 채 자수성가했다는 점에서 너무나 놀랍다. 단고테는 초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설탕 거래를 통해 돈을 벌 정도로 사업에 큰 흥미를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카이로에 있는 알 아즈하르 대학교(Al Azhar University)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21세 때 그의 삼촌인 사누시 압둘카디르 단타타 (Sanusi Abdulkadir Dantata)로부터 빌린 돈으로 무역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지금의 단고테 그룹의 시초가 되었다.

   단고테 그룹은 나이지리아의 설탕시장을 거의 독점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기업이 성장하게 되었다. 설탕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니 단고테 그룹은 나이지리아의 설탕소비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설탕시장에서 얻은 이익으로 성장한 단고테 그룹은 시멘트업, 제분업과 같은 다른 분야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또한, 부동산, 은행, 교통, 섬유, 천연가스, 석유업계 쪽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관련 기업 종업원 수는 약 1만 명이 더 된다. 또한 단고테는 아프리카에서 많은 기부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는 매년 아프리카를 위해 많은 금액을 기부하는 동시에 다양한 모금활동을 주선한다. 단고테는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나이지리아 코가(Kogi) 에서 심각한 홍수가 일어나 최소 36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0만 명의 수재민을 낳았다. 단고테는 막심한 홍수피해를 입은 나이지리아 이재민을 위해 약 1500만 달러(162억 원)을 쾌척했다. 또한, 그는 아프리카에서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위해 자신의 자선단체인 단고테재단(Dangote Foundation)과 빌게이츠재단(Bill n Melinda Gates Foudation)끼리 협정을 맺기도 하였다. 그는 기부의 투명성도 강조한다. 그가 기부한 내역을 단고테 재단의 홈페이지에 모두가 열람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나이지리아의 위대한 사업가이자 아프리카의 최고 재력가인 알리코 단고테는 아프리카인들이 말하는 ‘큰사람(big man)’이다.


출처: http://www.therichest.org/nation/richest-people-in-africa/

http://www.forbes.com/sites/mfonobongnsehe/2012/03/07/the-african-billionaires-2012/

http://www.forbes.com/profile/aliko-dangote/

http://www.howwemadeitinafrica.com/the-top-10-richest-african-billionaires/8369/

http://www.bdlive.co.za/articles/2008/10/08/dreams-of-an-african-pioneer

http://www.fm.co.za/fm/2008/04/25/cement-industry

http://www.huffingtonpost.com/tolu-ogunlesi/aliko-dangote_b_1642164.html

http://www.africanews.com/site/Dangote_is_still_Africas_richest_man/list_messages/42652

http://allafrica.com/stories/201211030565.html

http://www.forbes.com/sites/briansolomon/2012/11/21/africas-richest-man-donates-15-8-million-to-nigerian-flood-relief/

http://www.ngrguardiannews.com/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105986:kano-dangote-foundation-sign-pact-on-polio&catid=1:national&Itemid=559


 

 

아프리카연구소 HK사업단 <제19차 경계를 넘나드는 세미나> 개최

14Sep/13
IMG_4895

2013 9 12일 본 연구소 HK사업단은 <제19 경계를 넘나드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세미나에서 Abdelhamid Temmar(알제리 전 산업투자유치 및 전략기획부 장관)“The Political State of Algeria(알제리의 정치 상황)”라는 주제의 글을 발표했다.

아프리카연구소 HK사업단 <제19차 경계를 넘나드는 세미나> 개최 안내

01Sep/13

안녕하십니까?
새 학기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시작을 의미 있고 알차게 하고 싶은 분들 많으실 것 같습니다.

본 연구소 HK사업단에서는 아래와 같이 <알제리 전 장관의 알제리 정치상황 프레젠테이션>이

있을 예정이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아 래 ―

❍ 발표자 : 알제리 전 산업투자유치부 및 전략기획부 장관 Mr. Abdelhamid Temmar

❍ 주 제 : 알제리 정치상황

❍ 일 시 : 2013. 9. 12 (목) 14 : 00 ~ 15 : 00

❍ 장 소 : 본 연구소 세미나실 (국제사회교육원 연구동 406호)

❍ 주 최 :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남아공의 흑인차별정책

19Jul/13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남아공에서는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의 심화로 인해 흑인 정부에 대한 압박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부 선동적 정치인과 노조 지도자들은 급진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흑인 정부는 정책 실패가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의 잘못 때문이라고 항변해왔다. 하지만 지난 1994년 흑인 정부가 출범한 지 19년이 되는 시점에서 더는 현재의 문제를 백인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트레보 트레보 마누엘(Trevor Manuel) 장관이라 할 수 있다.

   2013년 4월 3일 국가기획위원회 장관 트레보 트레보 마누엘은 “정부는 더 이상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 흑인차별정책)를 탓해서는 안 된다”고 프리토리아에서 열린 정부 리더십 회의에서 지적했다. 즉 책임을 가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트레보 마누엘은 정부가 지금까지는 경험이 없었다는 변명을 해왔지만, 이제 약 20년의 민주정치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보 마누엘은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 ANC)는 4번의 집권을 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공무원과 정치인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데 대한 경고였다. “거의 예외 없이 공무원과 우리 정치인들은 같은 행동주의의 배경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정치 조직의 일원임에도 노동이라는 현실의 장에는 정치 조직이 아무런 실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라고 말한 데서 드러난다. 트레보 마누엘은 정치와 노동이 협력하여 실천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한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정치인과 공무원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공공 정책이 튼튼하게 잘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레보 마누엘 장관의 이러한 언급에 대해, 4월 11일 크리스 하니 전 공산당 당수 피살 20주년 기념식에서 자콥 주마(Jacob Zuma) 대통령은 반박을 했다. 즉 남아공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아파르트헤이트 탓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말하는 것은 잘못 생각한 것이라는 것이다. 주마 대통령은 단지 20년 만에 변화가 완벽히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 곳 한 쪽과 무단 거주자들이 있는 다른 한 쪽의 두 도시가 한 나라에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이는 민주정치의 소산이 아니라고 했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지금 현재에도 남아공에 엄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주마 대통령은 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든 사람들과 행동을 비난하고 탓하는 것을 멈출 순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주 트레보 마누엘의 언급은 반발을 일으켰고, 그는 전국교육보건의료연합 노동조합(National Education, Health and Allied Workers Union: Nehawu)으로부터 “부정직”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리고 주마 대통령의 말이 나온 후 트레보 마누엘은 답변하지 않았다.

   4월 11일 주마 대통령의 언급 이후, 남아공공산당(SACP)의 사무총장 크로닌(Jeremy Cronin)은 트레보 마누엘 장관의 언급을 옹호했다. 크로닌은 트레보 마누엘의 언급이 기존의 맥락과 어긋나게 언론에서 와전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트레보 마누엘의 말은 공무원들이 업무를 함에 있어서 더욱 활동적으로 임하기를 촉구하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F.W. 드 클레르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12일 주마 대통령에 대해 현 정권의 실업과 교육 실패 등의 문제를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말했다. 그와 같은 행동은 정부와 시민이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야 할 시점에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며, 의도했든 안 했든 인종적 적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11일에 주마 대통령과 트레보 마누엘 장관의 의도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두 입장 간 갈등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단순히 의견 차이로 넘어가기보다는 시사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과거 백인정부의 흑인차별정책이 현재 흑인 정권으로 부드럽게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남아공은 드 클레르크 전 대통령이 경고한 것처럼, 현실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참고: http://mg.co.za/article/2013-04-03-manuel-says-government-cant-blame-apartheid-anymore

http://www.iol.co.za/news/politics/manuel-was-ambushed-cronin-1.1498616

http://www.iol.co.za/capetimes/stop-blaming-apartheid-manuel-1.1495063

http://www.news24.com/SouthAfrica/News/FW-criticises-Zumas-apartheid-remarks-20130412

http://www.iol.co.za/news/politics/we-can-blame-apartheid-says-zuma-1.1498541

http://www.sowetanlive.co.za/news/2013/04/11/conflict-over-legacy-at-hani-memorial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과 이집트 정국

19Jul/13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이집트에서 진임 무바라크 대통령을 쫒아내고 시민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무르시 대통령이 군부에 의하여 축출된 이후 이집트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즉 무르시 대통령이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1년 만에 군부에 의해 축출됨으로써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하는 측과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에 찬동하는 측이 충돌이 일으키면서 이집트는 혼란에 빠진 것이다.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된 이유는 이집트의 경제난과 사회통합의 실패였다. 무르시 집권 이후 이집트 파운드 가치가 급락했고 외환보유고가 줄어들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됐다. 24세 미만 청년 실업률이 40%까지 치솟았고 무슬림 형제단이 이끄는 이슬람 정치 세력이 사회 통합에 실패하면서 결국 경제적·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겼다. 또 무르시 대통령은 민생문제 해결은 뒷전으로 미루고 이슬람율법에 의한 통치로 회귀하려는 일면 ‘파라오 헌법’을 밀어 붙였다. 무르시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며 과거의 독재를 답습했다. 대통령으로 취임당시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면서 이집트 국민은 등을 돌렸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는 재빠르게 이슬람주의자를 배제하면서 과도정부를 구성시켰다. 하젬 엘베블라위 총리 등 35명의 각료가 군부에 의해 임명되었다. 군군부의 최고 수장인 압둘 파타 엘시시 전 국방장관은 제 1부총리에 임명되었다.

무르시 대통령의 축출에 대하여 무슬림형제단을 배경으로 탄생된 누르(Nur) 당이 이에 극렬 반발하고 있다. 누르당은 이집트 총선에서 이집트 유권자 4분의 1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더욱 이집트 정국은 혼돈 상태로 치닫고 있다. 이슬람주의자는 시위뿐만 아니라 무장투쟁도 불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집트 내에서도 내전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튼 비록 무르시가 경제정책에 실패하였지만 군부가 이집트의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과연 정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 즉 무르시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한 것은 민주주의가 이집트에서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견해이다.

   그렇지만 이집트의 정국은 민주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민생 경제문제의 해결이 선결이다. 이집트 과도 정부가 일정한 시일 내에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군부의 신임을 준 국민조차도 다시 이슬람정부로 등을 돌릴 것이다. 이집트 정국의 관건은 이집트 민생문제의 해결이 무엇보다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