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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수단과 중국

22May/12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근대 국가로서의 수단은 1899년에는 영국-이집트의 공동 통치체제가 수립되었다. 이후 1956년 수단이 영국-이집트의 공동체제로부터 벗어나 독립을 선포했다. 그렇지만 수단남부는 그동안 영국에 의하여 장악되었기 때문에 북부의 이슬람체제와는 달리 기독교문화가 퍼지면서 남부수단 주민들은 토속문화와 기독교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언어도 북부수단에서는 아랍어가 널리 쓰였지만 남부에서는 영어가 널리 쓰였다. 이런 연유로 남부수단과 북부수단의 이질감을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이러한 상태의 수단이 2011년 7월 남부수단이 분리되어 주바를 수도로 하는 남수단공화국(The Republic of South Sudan)으로 독립을 선포하였다.

   북부 수단과 남부 수단사이에는 거대한 유전지대가 있어 독립을 선포하기 전에도 또 독립을 선포한 이후에도 석유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남부수단에 유전의 80%가 있고 북부수단에는 석유 수출에 필요한 정제시설과 송유관이 있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남북수단 간에는 다시 헤글리그 유전 관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와중에 중국은 남수단과 북수단에 있는 석유를 노리고 있다. 1960년대 일찍이 중국은 소련과의 관계악화로 인하여, 또 미국, 유럽 국가들의 1세계는 이념으로 인하여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중국은 아프리카에 중점적으로 외교관계를 강화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노력으로 인하여 중국은 제3세계의 수장노릇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중국의 외교정책으로 중국은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아프리카 국가들 역시 중국에 의지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하여 막대한 광물자원과 석유의 필요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수단이 분리하기 전 작년에 중국은 양쪽 수단으로부터 하루 260,000배럴을 수입하고 있었다. 이러한 중국수입량은 전체 수입량의 5%에 달한다. 그래서 중국은 수단에서 정치적 이념 즉 정치와 경제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은 남북수단문제에 어쩔 수없이 개입되고 있긴 하지만 중국은 철저히 남북수단 간의 등거리외교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류웨이민 외교부 대변인은 클리르 남수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앞서 2012년 4월 23일 “석유는 북수단과 남수단이 공유하는 경제적 생명선”이라고 말한 바 있고, 또 남수단이 2012년 4월 10일 헤글리그 지역의 주요 유전지대를 열흘간 장악하자 중국은 수단 국경지대에서 일어난 분쟁을 종식시킬 것을 공식 촉구한 바도 있다.

   이처럼 중국은 남북수단에 걸쳐 있는 석유를 가져오고자 등거리 외교를 펴면서 철저히 중국의 경제적 이익에 목적으로 하고 있다.


출처: 머니투데이 (2012년 4월 24일), 문화일보 (2012년 5월 12일)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2s3254a


반 성희롱 캠페인

22May/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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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그림에 나타난 아랍어 제목은 ‘성희롱에 대한 새로운 공격’이다. 이집트에는 이전부터 성희롱이 있었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이집트 사회 내에서 성희롱이 이슈화된 것은 2008년 켈메드나 월간 잡지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후부터이었다. 당시 아프리카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이집트 축구팬들이 경기장 근처를 지나고 있었던 30대 여성에 대하여 성희롱을 하였다. 즉 승리에 도취한 다수의 군중들이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던 여성에게 접근하여 옷을 벗기고 수치감을 안긴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근처를 지나고 있었던 택시기사가 벨트를 풀고 다수의 군중을 해산시킨 후 성희롱을 받던 여성을 구출하였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이집트에서 여성에 대한 성희롱문제가 이집트에서 표면으로 나타났다. 여성성희롱에 대한 설문조사도 있었다. 설문조사의 결과 이집트여성의 83%가 성희롱을 경험한 바가 있었다는 대답이 나왔다.

   여성보호에 대한 많은 NGO기구들이 나타나면서 활성화되었다. 이들 NGO들은 여성보호법을 주창하고 나섰다. 또 여성보호를 위한 많은 세미나와 토론이 여기저기에서 있었다. 거리에는 14세부터 24세의 여성들이 여성보호를 위한 전단지를 돌리는 등 자원 활동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점에 부응하여 이집트의회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을 중대한 범죄라 규정하면서 형법을 강화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여성을 낮추어보는 이집트사회에서 이 법률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을 여성운동가들은 근심하는 있다. 그래서 여성보호를 위하여 많은 여성들이 지금 이 시기에 성희롱근절에 대한 캠페인을 강화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Egypt Independent (2012년 5월 17일)

공동체교환시스템

22May/12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오늘날 대부분의 시장경제체제에서는 물가 혹은 환율로서 표현되는 일정한 가치를 지닌 화폐가 사용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유동적인 화폐가 사용되는 한 경제시스템이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시작되어 현재 전 세계 27,000명 이상의 구성원을 가진 큰 경제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이 경제시스템은 공동체교환시스템(Community Exchange System)이라고 불린다.

   공동체교환시스템은 2003년 케이프타운 탤런트 교환(Cape Town Talent Exchange)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이 체제가 확산되면서 물물교환에 사용되던 전통 화폐의 사용량이 크게 감소했다. 공동체교환시스템 내부에서는 탤런트(Talent)라는 화폐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공동체교환시스템의 구성원은 자신의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구성원에게 제공함으로써 탤런트를 얻을 수 있다. 제공된 탤런트는 다른 구성원의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사용할 수 있다. 현재 탤런트의 대략 1랜드(Rand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폐단위)와 흡사하다. 2011년에는 총 1,639,293탤런트의 물물교환이 이루어졌으며 2003년에 시스템이 출범한 이후 약 1,100만 탤런트의 거래가 이루어져 왔다. 판매자는 재화나 서비스를 팔고자 할 때 우선 자신이 가격을 책정한다. 그러나 이후 수요와 공급에 맞추기 위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공동체교환시스템에서 거래되는 주요 재화와 서비스는 대체의학, 주변의 환경적 잠재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건물디자인, 웹디자인, 중고품, 예술품, 수공예품, 의류 및 다양한 가내공업물품 등이 있다.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공동체교환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지만 이 시스템도 완벽하지는 않다. 대부분의 물물교환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화나 서비스와 관련된 정보가 잘못 전달되거나 이를 악용하는 판매자가 생길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오프라인 시장이 열린다. 오프라인 시장에서 회원들은 교환될 예정인 물건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케이프타운 탤런트 교환의 지배인인 다운 필라토위츠(Dawn Pilatowicz)는 “이 시스템의 목표는 공유하고 돌보는 방법으로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사람들로 하여금 돈에 집착하는 태도를 버리게 하며, 사람들에게 하나의 방식으로 주고받는 것을 가르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www.iol.co.za/capeargus/trading-on-your-talents-1.1282924


아프리카연구소 HK사업단 <제2차 인문한국(HK) 국제학술회의> 개최

30Ap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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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 27-28일 양일간 본 연구소 HK사업단은 “Africa In Asia & Asia In Africa: Asian Experiences and Perspectives in African Studies”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학술회의에서는 Daniel Bach(Science Po Bordeaux, Université de Bordeaux)를 비롯한 10명의 외국인 학자와 3명의 내국인 학자가 논문을 발표했다.

중동에서 일하는 케냐인 이주노동자 문제

27Ma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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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영국의 식민통치가 시작된 19세기 말 이전, 동아프리카 해안 지역에서는 아랍인이 주도한 노예무역이 수백 년간 성행했다. 당시 노예사냥에서 포획된 동아프리카 내륙의 흑인들이 인도양 무역로를 따라 중동 지역으로 송출되었다. 이러한 노예무역은 백여 년 전 근절되었지만, 최근 케냐 출신 이주노동자가 더 나은 수입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 에미리트 등지의 부유한 국가에서 환경미화원, 가사도우미, 보모 등으로 일하는 예가 많아졌다. 중동 지역 아랍인 가정에서 일하는 케냐인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에 의해 학대당하는 사례가 종종 기사화될 때, 케냐인들 사이에서는 과거 아랍인에 의해 자행되었던 노예무역의 역사와 맞물려 반아랍 정서가 강화되고 있다.


출처: http://www.nation.co.ke/oped/-/1192/1373532/-/view/interactive/-/6iaxfbz/-/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