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가 없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학생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새 학기가 시작되면 학생들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아마 새로운 교과서일 것이다. 우리는 교과서를 받는 즉시 자신의 이름을 적고, 앞으로 배울 내용이 궁금해 새 교과서를 쓰윽 넘겨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 7월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다. 학기가 시작한지 벌써 9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몇몇 州의 학교들은 아직도 정부로부터 교과서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언론들은 이를 ‘교과서 사태'(textbook scandal)라고 부르며 신속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으며 관련된 정부기관과 기업을 비난하고 있다.

   많은 주들 가운데, 특히 림포포 주(Limpopo Province)의 상황은 가장 심각하다. 림포포 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주 가운데 가장 가난한 주에 속하며 낮은 교육 성취도를 보여주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과서 부족으로 인해 림포포 주의 학교들은 다른 주의 학교와 비교했을 때 수업 진도나 수업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또한, 림포포 주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맹인학교 역시 제대로 된 점자 교과서가 부족하다. 교사들은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만들거나 복사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정부는 교육적으로 뒤쳐진 림포포 주의 학생들의 학업 증진을 위해 캐치업 플랜(catch-up plan)을 도입하였다. 캐치업 플랜은 림포포 주의 학생과 다른 지역의 학생 간의 교육차를 줄일 것으로 기대되었다. 허나, 정부의 야심찬 계획은 실패로 귀착될 확률이 높다. 이유는 역시 교과서이다. 정부는 캐치업 플랜을 도입하면서 교과서의 공급도 늘리기로 하였으나 교과서의 공급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정상적인 교과서의 배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10월 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고등법원은 캐치업 플랜을 계획대로 이행하기 위해서, 벌써 세 번째로 림포포 주 교육부에 교과서 배송의 정상화를 촉구했다. 또한, 림포포 주의 몇몇 학교들은 9월경 이미 ‘교과서 사태‘에 법적 책임을 물어 남아프리카공화국 교육부를 고소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서로의 책임만을 탓하며 문제의 원인에 대해선 깊이 고민하고 있지 못하다.

   에듀솔루션즈(EduSolutions)는 아프리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 ANC)와 관련있는 사업가와 이전 정부 관료들이 운영하는 회사이다. 대다수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정치인과 에듀솔루션즈가 ‘교과서 사태‘를 유발한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원래 교과서의 조달과 배급은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왔다. 하지만 2년 전, 림포포 주의 교육부는 교과서의 조달과 배급을 맡을 회사를 구하기로 하였다. 한마디로, 국가가 지금까지 운영해온 분야를 민간 기업에 위탁하려 한 것이다. 여러 회사들이 경쟁한 결과, 다른 지역의 큰 계약을 담당했던 에듀솔루션즈가 입찰 적격자로 선택되었다.

   작년, 교육부의 전 간부였던 쉬탄가노(Solly Tshitangano)는 민영화가 불순한 의도를 띠고 있으며 입찰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교육부로부터 해고당했다. 쉬탄가노는 사기업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인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은 담합을 통해 민영화를 추진하였고 교과서 가격을 올리고 납세자들의 세금을 사취했다는 것이다. 민간 기업이 참여하면서 교과서 제작과 공급에는 유통과정 단계가 늘어나게 되었고 비용이 증가하였다.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중앙정부는 이 사건에 직접 개입하여 올해 초 에듀솔루션즈과의 계약을 파기했다. 하지만, 이미 에듀솔류션즈는 큰 이익을 남긴 상태였고, 림포포 주 교육부의 예산은 거의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교과서를 주문하지 못해 새 학기를 맞을 준비를 못한 것이다. 또한, 나중에 조사결과 에듀솔루션즈가 입찰과정에서 애초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경쟁 없이 단독으로 입찰에 성공한 것이 밝혀졌다. 에듀솔루션즈는 경쟁을 뚫고 입찰에 성공했다는 거짓정보를 언론에 흘려 자신의 가치를 높인 것이다.

   왜 이런 비리가 발생하는 것일까? 바로 텐더프리뉴어쉽(Tenderpreneurship) 때문이다. 텐더프리뉴어쉽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쓰이는 단어다. 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인, 정부 관료들이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이용해 정부의 입찰이나 계약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림포포 주의 코사투 사무소(Limpopo’s branch of Cosatu) 소장으로 있는 세바비(Dan Sebabi)는 각지의 고위 정치지도자들이 텐더프리뉴어쉽을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해있거나 이끌어나가는 기관을 앞세워 유리한 입찰이나 계약을 따낸다. 세라비씨는 ‘교과서 사태‘의 주범인 에듀솔루션즈도 같은 부류의 형태를 띤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민족회의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은 사업가와 정치인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계약과 입찰을 따내 폭리를 취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하다.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니 재정건전성 역시 좋을리 없다. 회계감사에 따르면 237개의 도시 중 단지 7개의 도시만 재정건전성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의 사리사욕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림포포 주의 학생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미래의 남아공에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 있다.


출처: http://www.citypress.co.za/Politics/News/Textbook-saga-points-to-govts-serious-failure-ANC-20120730

http://www.citypress.co.za/SouthAfrica/News/No-update-on-Limpopo-textbooks-as-shortages-continue-20120726

http://www.bdlive.co.za/national/education/2012/09/14/limpopo-schools-still-short-of-textbooks

http://www.bdlive.co.za/national/education/2012/09/11/fresh-bid-to-force-textbook-delivery-in-limpop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