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도자 왕가리 마다이를 잃은 아프리카(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그녀의 교육 배경과 경력에서 드러나듯이 왕가리 교수는 아프리카의 ‘신흥엘리트’ 계층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다. 그녀와 동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아프리카의 수재들은 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이제 막 독립한 고국으로 돌아와 정계, 관계, 재계, 학계의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아프리카 신생독립국 운명의 키를 쥐고 있었던 이들 신흥엘리트는 아프리카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노력하기보다는 다국적기업과 결탁하여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식민주의자들의 착취가 사라지고 독립 정부가 들어서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 믿었던 아프리카인들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흥엘리트들이 대저택을 짓고 고급차를 굴리는 사이에 절대다수 아프리카인의 삶은 더욱 비참해져 갔다. 왕가리 교수는 부와 권력이 약속된 신흥엘리트의 길을 거부하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사회 변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프리카인의 보다 나은 삶을 지향했던 그녀의 소신은 기득권층인 신흥엘리트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왕가리 교수의 활동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왕가리 교수는 그린벨트운동(Green Belt Movement)과 케냐여성전국위원회(National Council of Women of Kenya) 등을 이끌며 환경과 여성 분야에서 케냐 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다. 특히, 환경 분야에서 그녀의 활동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왕가리 교수는 케냐 중부 고원 지역 마우숲(Mau Forest) 등 삼림지대 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최근 몇 십 년간 급격하게 증가했다. 1950년대 3억 명을 밑돌던 아프리카 인구가 지금은 10억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곧 환경 파괴를 가져왔다. 아프리카의 삼림이 거주지와 농경지로 잠식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당장 아이들 먹을거리가 필요한 아프리카 빈농의 부모에게 옥수수 심을 농지를 확보하거나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지 말라는 소리는 그냥 굶어 죽으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왕가리 교수는 삼림 파괴가 초래할 재앙을 이들에게 설명하고 녹지화 사업을 통해 이들의 일자리 창출을 모색하기도 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녹지를 기득권층의 탐욕으로부터 지켜내는 데도 왕가리 교수는 결사적이었다. 1990년 당시 대통령이자 집권당 카누(KANU: Kenya African National Union)의 당수인 다니엘 아랍 모이(Daniel arap Moi)는 나이로비 중심가에 있는 우후루공원(Uhuru Park)에 집권당사를 건축하려 했다. 왕가리 교수는 뜻을 같이하는 케냐의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온몸으로 우후루공원 개발을 저지했다. 또한, 그녀는 나이로비의 고급 주택지 무타이가(Muthaiga) 근처의 카루라숲(Karura Forest)을 건설업자들의 개발 야욕으로부터 지켜내기도 했다. 왕가리 교수의 녹지 공간 보존에 대한 선견지명이 없었더라면, 지금 나이로비는 난개발의 폐해로 신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극소수의 부유층이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여 불도저 시동을 걸때마다, 왕가리 교수는 다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그 앞을 막아섰다.

   21세기 지구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겪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의 사막화는 이미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고,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재앙을 초래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왕가리 교수는 탐욕에 눈이 멀어 예견된 재앙을 방치한 아프리카의 엘리트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진정으로 아프리카 대중의 행복을 꿈꿨던 지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