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수단의 이슈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금상문


   아프리카 대륙 이집트 아래쪽에 잡은 수단은 2011년 5월 현재 남북수단의 분리, 남북 수단 접경지역에 있는 유전지대인 아비에이 귀속문제, 북수단의 다르푸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동서수단인들 간의 내전상황 등이 2011년 수단이 봉착하고 있는 대단히 큰 이슈이다.

   남북수단의 분리문제를 살펴보면, 2005년 1월 남북 수단 사이에 체결한 ‘포괄적 평화협정’(CPA)에 따라 2011년 1월 9일에서 15일까지 남부수단의 유권자 393만588명이 참가하여 분리 독립에 찬성 하는가 또는 반대 하는가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7월에 정확한 투표결과가 나오지만 국민투표 결과 남수단인의 98.83%가 분리 독립에 찬성한 것으로 최종 집계됐다. 따라서 남부수단의 분리 독립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남북수단 간의 이질적 분리는 1897년 영국이 수단을 점령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영국은 남부에 기독교와 영어를 전파하면서 북부의 이슬람과 아랍어와의 관계를 철저히 차단하였다. 남부 수단의 분리는 영국의 분할통치정책의 산물이었다. 영국은 북부와 남부를 분리해 남부를 우간다와 케냐를 포함하는 동아프리카 연방으로 독립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후 수단이 영국과 이집트로부터 1956년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도 수단정부는 북부 수단 우대정책을 실시하였고, 이결과 남부 수단은 철저히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남부 수단 인들은 남부 수단인민해방군(SPLA)을 조직하여 북부 수단에 대항하여 남부 수단의 독립을 쟁취하고자 투쟁하였다. 금번 남부 수단의 투표는 남부 수단 인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 결과이다.

   하지만 남부 수단이 독립을 한다고 해도 여전히 남북 수단 간에 문제가 남아있다. 남북 수단 경계선에 있는 석유가 나오는 ‘아비에이’ 지대에 대한 귀속문제가 그것이다. 수단에는 6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매장 원유의 70%가 남부 지역인 ‘아비에이’ 지역에 있다. 하지만 파이프라인과 항구 등 석유 수출 시설은 북부 수단에 있다. 남북 수단간의 첨예한 이해지역인 ‘아비에이’ 지역에서 남부 수단을 지지하는 딘카족과 북부 수단을 지지하는 미세리야 족 간에 충돌이 빚어져 70여 명이 숨졌다. 북부 수단이 ‘아비에이’ 지역의 귀속 문제를 빌미로 남북 수단 간의 내전을 다시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에서의 내전은 양측은 석유를 이용하지 못하고 남북 수단의 공멸이 될 것이다. 이 지역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은 순찰 근무 강도를 높이고 남부. 북부 지도부와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석유 외에는 자원이 없는 남부 수단은 ‘아비에이’에서 나오는 석유를 수입원을 발판삼아 남부 수단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 수단은 발전을 위하여 협력을 해야 한다. 여러 분석가들이 내놓는 의견처럼 남북 수단은 분리가 되어도 절대적으로 상호의존 해야만 남부와 북부 수단이 다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북부 수단 서쪽에 다르푸르 분쟁이 있다. 이 다르푸르 분쟁은 푸르(Fur), 자가와, 마살라이트 종족으로 구성된 흑인계 무슬림과 수단정부의 지원을 받는 잔지위드라 불리는 아랍계 무슬림 간의 분쟁이다. 잔지위드는 대부분 낙타로 이동하는 유목민인 리지가트의 아랍 바가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분쟁의 시발은 아랍계 유목민은 물을 찾아 그들의 가축을 더 남쪽으로 이동시켰고, 이곳은 주로 비아랍계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농경민과 유목민 간의 분쟁이 일어났다. 이 분쟁으로 잔지위드는 흑인계를 말살시키려는 ‘인종청소’를 하였다. 이 결과 흑인계 약 30만 명이 사망하였고, 약 250만 명이 난민이 되면서 주변 국가에서 피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흑인계는 수단해방군을 조직하여 잔지위드와 수단정부에 대항 중이다.

   이처럼 2011년 수단의 상황은 북부에서는 북부 나름대로, 남부에서는 남부 수단 독립국을 쟁취하기 위한 문제, 남부와 북부 수단 간에는 아비에이 지역문제가 있다. 하지만 수단인들은 남북을 불문하고 다 같이 공존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