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해안 지역의 분리 독립 운동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지난 2012년 7월 25일 몸바사 고등법원은 케냐 해안 지역의 분리 독립 운동 조직인 ‘몸바사공화국회의’(Mombasa Republican Council, 이하 MRC)를 불법화시킨 케냐 정부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MRC는 지난 2008년 케냐 정부에 의해 불법 폭력 단체로 규정되어 그 활동이 전면 금지되었었다. 그간 MRC의 집회나 조직 활동은 경찰의 탄압을 받았지만, 이 판결로 인해 MRC의 불법성이 제거된 것이다. 그러나 2013년 3월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MRC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지자 이 단체에 대한 케냐 정부의 탄압은 지속되고 있다.

   케냐 해안 지역의 분리 독립 요구는 그 기원이 독립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이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유럽 식민종주국의 지위가 약화되고,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케냐 해안에도 독립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때 해안 사회에서 가장 조직적으로 독립 운동을 펼친 세력은 아랍인 및 스와힐리인이었다. 이들은 잔지바르 술탄의 케냐 해안 영토에 대한 주권을 근거로 해안 지역의 분리 독립을 주장했다. 당시 케냐 내륙 지역은 영국의 직할식민지(Crown Colony)였지만, 해안 지역, 정확하게는 해안선으로부터 내륙 10마일 지점까지는 잔지바르 술탄의 주권이 인정되던 영토로서 영국이 보호령(Protectorate)을 선포하고 실질적인 식민통치를 실시하던 지역이었다. 1963년 독립을 선포한 현재의 케냐는 엄밀히 따지면 영국의 내륙 직할식민지와 해안 보호령 지역이 통합된 국가다.

   독립 이전에 아랍·스와힐리계 엘리트가 주도한 분리 독립 운동, 즉 ‘음왐바오 운동’(Mwambao Movement)은 케냐 해안 사회의 다수 집단인 미지켄다(Mijikenda)인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당시 미지켄다인은 스와힐리인 및 아랍인 주도의 분리 독립이 해안 사회에서 스와힐리인 및 아랍인의 우월한 지위를 보장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독립을 앞둔 시기 미지켄다인은 내륙과 해안이 통합된 케냐의 탄생을 지지하면서, 해안의 자치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연방주의를 지지했다.

   독립 이후, 내륙 출신 엘리트가 해안의 자원을 독차지하는 상황에서 스와힐리인, 아랍인, 미지켄다인 할 것 없이 케냐 해안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치·경제적으로 주변화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내륙 출신 민족집단에 대한 적대감으로 이어져 해안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1997년 선거를 앞두고 몸바사 인근 리코니(Likoni)에서는 미지켄다 청년들이 내륙 출신 이주자나 정부 관청을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07년 선거 이후 폭력 사태 때도 내륙 출신 이주자에 대한 폭력이 보고되었다. 이러한 내륙 민족집단에 대한 적대감은 케냐 해안 지역민 모두가 이 지역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해안은 케냐가 아니다”(Pwani si Kenya)라는 구호는 해안 지역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며, 해안 지역민의 회합에서 자주 제창되고 있다. MRC는 해안 지역민의 내륙 출신 민족집단에 대한 반감을 토대로 조직적인 분리 독립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MRC의 분리 독립 요구가 실현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륙 출신 엘리트가 해안 지역의 자원을 독식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해안 지역민의 분리 독립 요구는 그 목소리가 더욱 높아질 것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