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이한규
탈냉전 이후, 국제기구들의 위상과 역할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국가 위상은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그 국가가 차지하고 있는 국제적 위상을 전혀 무시할 수 없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 상호작용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원동력이 되지만 국가의 국제적 역할이 중시되고 있다. 특히 유엔은 지역분쟁의 예방 및 해결을 종전과 같은 PKO파견과 ODA확대만을 통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1993년 소말리아와 2004년 르완다 사태에서 보여준 것처럼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이 없는 곳에는 간여하지 않는 선택적 고립주의 정책으로 국제평화와 안정이 용이하지 않았다. 이에 유엔은 각 대륙의 지역협력 기구를 통해서 역내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유엔 권위로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유엔 역할에 대한 변화는 지역협력을 강화시켜 줄 뿐만 아니라 역내의 정치 · 사회 · 문화적 환경을 고려한 분쟁해결 및 예방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탈 냉전이후 PKO 활동 유형으로 혼성평화유지활동(제 2세대 평화유지: Second generation of peace keeping)을 강조하고 있고 이러한 차원에서 편성혼합군인 UNAMID(유엔-아프리카연합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코트디부아르 정부가 아프리카 개발은행(AfBD: African Development Bank) 본부를 재(再)유치 노력은 많은 시사점을 준다.
AfBD는 1966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후 약 38년 동안(2003년까지) 아비장에서 아프리카 경제발전의 산실역할을 하였었다. AfBD와 같은 국제기구의 유치는 국력 상징을 넘어 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이익 창출의 효과를 가져다 준다: 고용증대, 국제기구 공무원 및 가족 상주로 인한 소비지출의 변화, 호텔 관광업의 활성화 등. 특히 AfBD는 2005년 50억불에서 2008년 120억불의 재정 안정으로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역할도 기대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2010년 현재 AfBD의 발전기금도 약 90억불에 다다르고 있어 명실상부한 아프리카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AfBD본부는 2002년부터 계속된 코트디부아르 내전으로 2003년 임시로 튀니지로 이전되었다. 2011년 4월 전임 대통령 바그보(Gbagbo)가 체포됨으로써 내전은 일단 종식되었지만 정세는 여전히 불안하다. 2010년 5월 AfBD년례 총회에서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와타라(Ouatara)가 AfBD본부의 재(再)유치를 강력히 주장하였지만 AfBD총재는 코트디부아르 국민들 스스로가 지속가능한 안전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53개 아프리카, 24개 유럽, 아시아 및 미국 등 주요 주주 국가들이 2011년 6월 9-11일 포르투갈 리스본 총회에서 AfBD총재를 전폭적으로 지지함으로 코트디부아르의 AfBD본부 재(再)유치는 무산되었다. 그러나 와타라에게 있어서 AfBD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2014년에 AfBD본부 유치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즉 AfBD본부 유치가 고용증대, 국제기구 공무원 및 가족 상주로 인한 소비지출의 기대, 호텔 관광업의 활성화에도 중요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크고 작은 사회 · 정치적 갈등을 일시적으로 봉합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있다는 것이 문제다. 1차 세계 대전으로 이후, 국제평화와 인류발전을 위해 창설된 국제연맹 실패의 주요 원인은 국제기구에 대한 정치적 수단화였다. 이러한 점에서 AfBD 본부의 아비장으로의 이전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21세기 아프리카 대륙의 중장기적인 미래와 관련하여 신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