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 연구교수 박정경
2012년 5월31일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사파리파크호텔(Safari Park Hotel)에서는 케냐 정부의 주요 인사와 외교사절단이 참석하는 국가조찬기도회(national prayer breakfast meeting)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마침 케냐를 방문하고 있었던 미국 델라웨어 주 상원의원 크리스토퍼 쿤스(Christopher Coons)가 초청연사로 연설을 진행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는데, 그 이유는 쿤스 의원이 연설 앞부분에 자신의 유창한 스와힐리어 실력을 뽐냈기 때문이다. 대학 재학 시절 케냐의 나이로비대학교에서 유학한 경력을 가진 쿤스 의원은 스와힐리어로 학창시절 자신과 케냐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케냐에 대한 애정을 피력했다. 미국 상원의원이 오랫동안 케냐의 국어(national language)였고, 지난 2010년 신헌법에서 공식어(official language)로 지정된 스와힐리어로 연설을 시작하자 케냐 정부관료 및 정치인들로 구성된 청중들은 깜짝 놀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프리카에는 2,000여 개의 언어가 있다. 이 말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그 수만큼 존재한다는 의미와 대체로 일치한다. 현재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의 국민은 서로 다른 모어(mother tongue)를 사용하는 집단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의 공식어는 영어, 불어, 포르투갈어 등의 식민종주국 언어인 경우가 많다. 이들 국가에서는 어느 한 민족집단의 토착어를 공식어로 지정하기보다는 식민지 시대부터 행정 및 교육의 언어로 사용된 식민종주국 언어를 통해 서로 다른 모어를 가진 집단들 간 국민적 통합을 모색한다. 몇몇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화자수가 많거나 교통어(lingua franca) 역할을 하는 토착어를 국어로 지정하여 그 언어의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적인 부문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는 식민종주국 언어보다 열등한 지위에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프리카 국가의 외교 현장에서도 벌어진다. 서방 국가를 방문한 아프리카 정상은 자국의 토착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면서 방문 국가의 정상과 회담을 진행하기보다는 식민종주국 언어를 사용한다.
식민지 시대부터 독립 이후 현재까지 아프리카 사람들의 토착어 사용은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는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위한, 별다른 도리 없는 선택이다. 이러한 언어 상황에서 아프리카인들에게 식민종주국 언어는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풍요로운 미래를 보장해 주는 언어로 인식되며, 아프리카 토착어는 촌스럽고, ‘미개한’ 언어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제국주의의(혹은 세계화의) 책략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그들의 토착어에서 느끼는 친밀감을 막지는 못한다. 가정에서 가족들 간 대화, 거리에서 만난 고향 사람들 간 안부인사, 재래시장에서의 치열한 흥정, 등등 아프리카인의 사적인 일상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는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아프리카 토착어인 스와힐리어는 케냐 및 탄자니아에서 국민통합의 언어로 국민 대다수에게 친숙한 언어다. 서방 세계의 유력 인사가 케냐나 탄자니아를 방문하여 스와힐리어로 연설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현지인은 그 인사로부터 많은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언어를 통한 정서적 교감은 양국의 교류 관계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 한국이 다방면에 걸쳐 아프리카 국가와의 협력사업을 확대하고 있는데, 협력사업 관계자를 대상으로 아프리카 토착어 교육을 강화한다면 더욱 알찬 결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