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서아프리카에서 수 에볼라 바이러스와 관련하여 수천 명의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자 현 상황을 비상사태로 선언했다. WHO에 따르면, 2014년 10월 10일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 수는 8,399명, 사망자 수는 4,033명에 달한다. 전례 없는 사망자 수와 감염 때문에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으며, 보건 전문가들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치료 백신도 없는 상황에서 사태가 더욱 악화되자, 아프리카 국가들과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도 방역 대책에 비상이 걸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득 처음 에이즈가 발병하던 당시가 떠올랐다. 에이즈 역시 처음 아프리카에서 발병된 것으로(에이즈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에볼라가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것과 같이, 에이즈는 HIV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된다. 둘 모두 체액을 통해 전염되는데, 효과적인 백신이 없으며, 치료되지 못할 경우 사망에 이른다. 감염자 대부분이 선진국가의 국민이 아닌, 아프리카인들이어서 치료제 개발이 미흡하다는 점 역시도 그러하다. 다행이 에이즈의 경우 치료제가 개발되었고, 1년 약값이 천만 원이던 것이 2005년 이후 80% 이상 떨어졌으며, 남아공의 경우 무상공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많은 과학자들은 에볼라 전염병의 확산이 에이즈가 처음 발병하여 확산된 상황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질병통제 및 예방 센터(the 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의 책임자인 톰 프레든(Tom Frieden) 박사는 에볼라를 에이즈와 비교하면서 에볼라가 ‘에이즈 다음의 세계적 질병’이 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경고했다. 보건 및 의학 전문가들도 에이즈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된 이유가 각 나라들이 그것에 너무 늦게 대처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에볼라에 대한 대응 역시 이와 유사하게 너무 미온적이고 더디다.
두 질병이 악화되는데 작용한 결정적 요인은 질병의 존재를 부인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에이즈 발병 사태에 대한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반응은 문제를 부정하거나 묵살하는 것이었다. 아프리카 정치인들은 에이즈를 서구에서 유입된 단순 질병 정도로만 간주했다.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감염 위험성에 대해 무신경한 태도를 보였다. 초창기 에이즈 발병 당시 탄자니아에서 유행하던 문구- “에이즈가 나를 죽게 내버려둬라; 나는 결코 젊은 숙녀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를 보면 에이즈에 대한 아프리카인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이르에서는 에이즈가 후천성 면역결핍증인 SIDA로 알려져 있는데, 이 국가의 대학생들은 에이즈 경고와 관련한 문구를 “연인들을 좌절시키는 상상의 신드롬”이란 의미로 바꿔 해석하기도 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가들이 에이즈 교육 프로그램은 인구 성장을 제어하기 위한 정부의 음모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에이즈를 ‘우리로부터 섹스를 빼앗아가기 위해 아프리카너들이 발명해낸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 타보 음베키는 사이비 과학에 잠시 빠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HIV 바이러스는 에이즈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음베키는 에이즈 “부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편에 있었다. 하버드대학의 공중위생학과 연구에 따르면, 남아프리카에서 약 33만여 명의 사람들이 음베키가 주장한 “부정론”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으며, 바이러스에 감염된 3만 5천여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고 밝혔다.
에볼라도 이와 유사한 운명에 처해 있다. 발병의 근원지이자 전염이 한창일 때에 라이베리아에서 약 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약 92%의 응답자가 에볼라 바이러스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들은 정부가 스폰서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태도는 그들의 생활습관-죽거나 병든 동물들을 취급하는 방식이나, 시신을 다룰 때에 여전히 손을 잘 씻지 않는 행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병의 확산을 초래하였다.
라이베리아의 주요 신문은 라이베리아 출생의 미국 델라웨어 주립대학교(Delaware State University)의 시릴 브로데릭(Cyril Broderick) 교수의 글을 실었는데 그 내용은 에볼라 전염이 미국 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생물학적 테러 실험의 결과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음모론자들과 미신론자는 이런 글을 맹신하고 있다. 그런 글들은 에볼라와 전면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보건 관련 종사자들에 대한 불신과 폭력을 부채질한다.
7월 말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된 이래, 아프리카는 물론 우리나라의 언론에서는 에볼라 관련 소식들을 매일같이 전하고 있으며, 그 위협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에서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것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그 대비책이 여전히 미흡하다. 발생국인 라이베리아나 시에라리온 정부에서는 구체적인 해결방안이나 대비책을 여전히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국민들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통제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함과 동시에 질병 확산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의심환자가 거리에 돌아다니면 집단 돌팔매질을 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에서 집중 보도하는 것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에볼라 발병 방지 및 확산을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제도가 시행되고 있지 않다. 10월 20일부터 부산에서 개최는 ITU 전권회의에 참석하기로 한 서아프리카 3개국의 대표단들은 국내 여론을 의식한 정부 기관에 의해 입국이 허용되지 않아 방문이 취소되었다. 한편, 지난 주 정부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보건인력 10여 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러한 겉핥기식 행정 조치가 아닌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침과 대안 마련이다.
며칠 사이에 에볼라 환자들을 치료했던 유럽인과 미국인 의료진 일부가 에볼라에 감염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잠복기가 있는 만큼, 또 언제 어디서 환자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에볼라가 에이즈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질병의 과학적 특징 및 사례 규명과 예방법 등에 대한 대중 교육을 더 강화해야만 한다. 국민들 스스로도 남의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스스로 위기의식을 가지고 보다 관심을 갖고 질병 확산 방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