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는 약 3천 개의 종족(種族)이 있다. 이 중 천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종족은 25개 정도다. 특히, 하우사족(7,000만 명), 요루바족(4,400만 명), 오로모족(3,500만 명), 이보족(3,400만 명)은 거대 종족이다. 이에 반해,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종족도 적지 않다. 이들 중에는 불과 수백 명 또는 수천 명의 인구를 가진 종족도 여럿 있다. 21세기에 들어 세계 도처에서는 사회·경제적 변화가 더욱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소수 종족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하다. 이러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 대표적인 종족 중 하나가 산족이다.
산족은 가장 오래된 인류이자 남아프리카의 최초 원주민으로 알려져 있다. 1652년 네덜란드인이 남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무렵 산족 수는 25~3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오늘날 산족 수는 1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 중 5만 명은 보츠와나에, 3만 5천 명은 나미비아에, 7천 5백 명은 남아공에, 5천 명은 앙골라에, 2천 5백 명은 짐바브웨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전통적인 생계 방식인 수렵·채집만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산족은 불과 3천 명 이하일 것으로 추정된다.
보츠와나의 산족은 19세기 후반 츠와나족이 이 일대의 지배 종족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고단한 역사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1885년 베추아날란드가 영국의 보호령이 된 이후에는 내부 식민지적 질서가 자리 잡았다. 산족 사회는 츠와나족과 식민지 정부의 이중 지배를 받으면서 점차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1966년 보츠와나가 영국에서 독립했을 무렵 산족 인구는 약 3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중 4분의 3가량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이미 상실하고 농노나 이와 유사한 존재로 전락해 있었다. 독립 이후에도 산족의 삶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구축된 불평등한 종족 관계는 더욱 구조화되고 있다. 이것은 국가의 지지를 받는 지배 집단에 의해 산족이 더욱 가난해지고 주변화되며 착취당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산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더욱 확산 및 고착되고 있다. 이런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산족 사회는 전형적인 ‘제4세계 사람들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산족 사회에 치명타를 입힌 것은 보츠와나 정부가 1974년부터 현재까지 추진하고 있는 오지개발프로그램이다. 1980년 중앙칼라하리 동물보호구역(이하 ‘보호구역’으로 표기)에서의 다이아몬드 광맥 발견은 이 프로그램을 추동한 요인 중 하나였다. 이 프로그램은 보호구역에 있던 산족마저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 보호구역에 남아 있는 소수의 산족은 생계를 잇고 사회 서비스에 접근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이주지에 재배치된 산족의 삶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완전히 상실하고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 이처럼 오지개발프로그램에 따른 강제 이주는 산족 사회에 대재앙을 초래했다. 산족에게 이 프로그램은 소수 종족 말살 정책에 불과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이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고유한 생활방식과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서의 산족 사회는 얼마나 더 존속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