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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힐리어가 아프리카의 해방 투쟁에 기여한 공로
언어와 해방 투쟁 사이에는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언어 사회인 아프리카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제1, 2차세계대전과 반식민주의 투쟁의 과정에서 스와힐리어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해방 투쟁에 크게 기여했다.
탄자니아에서는 탕가니카아프리카민족동맹(TANU)이 언어가 다른 여러 종족을 통합시키는 데 중추적 기능을 수행했다. 정치 지도자들은 식민 통치로부터 벗어나 하나의 통합된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스와힐리어를 사용했다. 탄자니아의 국부 줄리어스 니에레레는 스와힐리어가 모든 이의 언어이며 독립을 쟁취하고 신생 국가를 통합시키는 데 있어 스와힐리어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믿었다.
케냐에서도 키쿠유족을 중심으로 전개된 反英무장 투쟁 마우마우 시기 스와힐리어가 여러 종족을 통합해 내는 역할을 했다. 초대 대통령이던 조모 케냐타도 스와힐리어로 연설함으로써, 해방 투쟁에서 케냐인을 통합해 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1960년 여러 反植民 단체를 통합시켜 케냐아프리카민족동맹(KANU)를 창당했을 시기에도 스와힐리어가 여러 종족을 통합시키는 역할을 했다.
1959년 기니의 세쿠 투레가 코나크리에서 해방 투쟁의 도상에 있던 국가들의 모임을 주최했을 때에도 스와힐리어가 사용되었다. 당시 말라위의 카냐마 치우메(Kanyama Chiume)는 스와힐리어와 영어를 구사했고, 콩고민주공화국의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는 스와힐리어와 불어를 구사했다. 영어와 불어가 참석자들 사이에 경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스와힐리어가 자연스럽게 이들을 연결해 내는 교량 역할을 한 것이다.
모잠비크, 짐바브웨, 남아공화국, 앙골라, 나미비아도 해방 투쟁을 전개하던 과정에서 탄자니아에 군사 훈련 기지를 제공 받았다. 군사 훈련은 스와힐리어로 실시되었다. 체 게바라도 콩고 내전에 참전한 바 있는데 초기에는 탄자니아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때 스와힐리어를 배웠다. 이처럼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해방 투사들은 탄자니아에서 스와힐리어를 배웠고 이들의 귀국과 더불어 스와힐리어도 알려지게 되었다.
우간다의 경우도 유사하다. 이디 아민이 집권하던 시기 경찰과 군대의 언어로 스와힐리어를 사용하게 하는 조치를 취해, 이디 아민과 스와힐리어를 동일시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민족저항운동(NRM)도 스와힐리어를 사용했다. 때문에 민족저항운동을 이끌었던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도 스와힐리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스와힐리어는 향후 아프리카연합(AU)과 동아프리카공동체(EAC)에서 중요한 기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동아프리카공동체의 스와힐리어평의회가 출범되었다. 잔지바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평의회는 스와힐리어를 통한 상호 이해를 촉진시키고 의사소통 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다. 스와힐리어가 동아프리카 지역을 넘어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세계에서 국제어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헌신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교육 언어에 대한 대안적 철학
최상의 교육 체계를 수립하여 학생들에게 창조성, 자율성, 자발성을 길러 주는 것은 국가 발전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더불어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는 교육 체계에서 가르쳐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러면 이러한 덕목과 자질을 길러 주기 위해서 중요한 전제 조건은 무엇인가? 우선, 학생들의 이해 능력이 중요하다. 어떤 내용과 가치를 내면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언어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며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탄자니아에서는 교육 체계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에 대한 논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초등 교육에서는 스와힐리어로 가르치지만, 중등 교육부터는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육 받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온전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되어 왔다. 과연 영어로 교육을 받을 때 학생들이 교육 받은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가?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와 지식의 습득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정보와 지식을 제대로 습득할 수 있을까? 교수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도록 하는 과정은 진정한 교육 과정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정보를 이해하고 소유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는 언어는 교육 언어가 될 수 없다. 탄자니아에서 영어가 교육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왜곡시킨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는 스와힐리어를 교육 언어로 채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언어로 사고하고 논의하며 다양한 문제나 개념을 분석한다.
학생들은 교육 과정에서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자신들과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충분히 알고 있는 언어로 교육 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과정이 없으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탄자니아가 독립을 하고 국회를 개원하면서 줄리어스 니에레레 초대 대통령은 “문화가 없는 나라는 영혼이 없는 사람들의 집합체나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대학교에서 생산되는 연구의 약 90퍼센트가 영어로 생산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연구 결과가 탄자니아인과 공유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학에서 생산한 지식의 사회적 공유는 사회 발전과 진보를 추동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언어 문제로 인하여 대학에서 생산된 지식이 사회와 유리되고 관련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탄자니아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스와힐리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아프리카의 현실과 맥락에서는 행운이다.
교육 언어에 대한 대안적 철학이 참으로 절실하며 보다 민주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이라면, 다수의 국민이 이해하는 언어로 교육을 받으며 국정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