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아프리카 단일통화 구축 노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 HK연구교수 김광수


   2018년 1월 1일 나미비아 빈트후크(Namibia Windhoek)의 야쿠부(Yakubu) 씨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집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향했다. 세계 어디에서나 그렇듯 휴일에는 거의 대부분의 은행이 쉰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아침 일찍 향했지만 벌써부터 은행에는 사람이 많았다. 긴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딘가 설레 보였다.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두어 시간 후 야쿠부 씨의 차례가 돌아왔다. 야쿠부 씨의 요구는 간단했다. 은행도 야쿠부 씨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다. 창구직원에게 그가 던진 말은 단 한마디였다.

  “아프리칸(African : 남부아프리카 단일통화 가칭) 돈으로 바꿔주세요.”

   이 광경을 목격한 스페인(Espagna) 출신 관광객 로드리게스(Rodriguez) 씨는 16년 전을 회상했다. 2002년 1월 1일 그 역시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집 근처 은행에서 줄을 서 야쿠부 씨와 같은 일을 했다. 다만 그의 요구는 “유로화로 바꿔주세요!”였던 것만 달랐을 뿐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앙은행의 부총재인 대니얼 음미넬레(Daniel Mminele)는 지난 3월 말에 있었던 SADC역내국가 통화지불시스템 프로젝트 워크샵의 모두연설에서, SADC 국가들과 프로젝트 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2018년까지 SADC의 단일 통화를 만들자는 목표를 제시했다. 아프리카 역시 유럽 연합과 마찬가지로, 공동 통화제도를 창설하고 역내국가간 단일경제블록을 형성하는 것이다.

   SADC는 남부아프리카 개발공동체(Southern African Development Community)의 준말로서 남아공,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대륙 남부의 16개국을 회원국으로 하고 있다. 1992년 창설 이후 SADC는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주로 사회적 문제를 다뤄왔다. 역내 국가들의 가장 큰 문제였던 에이즈 문제 등 사회보건문제, 식량 문제 등이 주요 이슈였다. 그러다 2001년부터 역내 경제 블록을 형성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SADC 국가들 간의 공동 FTA협정, 관세동맹 문제 등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현재는 단일통화제도에 관련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음미넬레 부총재가 연설을 한 장소인 SADC 지불시스템 통합 워크샵은 이러한 단일통화제도로 나아가는 출발선이다. 유럽 연합이 그러했듯 SADC 역시 지불시스템을 어떻게 통합시킬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시작된 지 1년에 불과하지만 지불시스템의 통합을 위한 논의는 상당히 진전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미 남아공, 스와질란드(Swaziland), 레소토(Lesotho) 등이 참여한 공동통화지역(Common Monetary Area : CMA)을 통해서 단일 지불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쌓은 상태에서의 논의였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들은 모두 공동화폐로 남아공의 랜드(Rand)화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기와 유럽발 국가부도사태를 맞으면서 논의 자체가 잠시 주춤한 상태다.

   단일경제블록이 형성되고 단일통화가 형성되는 것은 남부 아프리카에 있어서 ‘양날의 검’이다.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신관호 교수는 그의 화폐금융이론 강의에서,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경제 블록으로 묶이는 것은 어쩌면 강력한 통화와 통제력 있는 중앙은행을 건설하여 모든 역내 국가들에게 큰 혜택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Greece)의 부도, 포르투갈(Portugal)의 구제금융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작은 충격에도 역내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험도 크다.”고 말했다. 남부아프리카의 경우 은행의 역사가 짧을 뿐 아니라 짐바브웨(Zimbabwe)처럼 중앙은행이 경제의 통제권을 상실한 초인플레이션 국가 역시 역내에 존재하는 만큼 ‘유럽세계가 수 백 년에 걸쳐 망쳐놓은 아프리카의 통일’이라는 감상적인 접근이 아니라 정교한 경제학적 이론들을 바탕으로 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어쩌면 남아공처럼 상대적으로 건실한 경제를 가진 국가에 역으로 해를 끼칠 수 있으며, 만일 출범한 남아프리카 중앙은행이 경제의 통제권을 잃을 경우 어쩌면 남부아프리카 전체의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래 SADC가 구상하고 있던 계획은 2010의 관세협정, 2015년에는 시장통합, 2016년에 통합중앙은행 설립을 거쳐 2018년에 단일통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앞서 야쿠부 씨의 사례를 2018년으로 잡은 것이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 남유럽의 재정파탄에 근거한 유로존의 붕괴위기 등에 의해 이들 목표는 다시 조정될 것이다. 음미넬레 부총재가 스스로 “목표된 날짜들이 크게 조정되겠지만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팀은 목표를 잃지 말고 일하라!”고 말한 만큼 2018년에 단일통화가 출범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의 중앙은행들이 모여 단일통화를 논의하는 지금 남부아프리카가 단일경제블록을 형성할 경우에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아프리카 경제에 있어 다른 경쟁국보다 상당히 뒤쳐진 형국이다. 남부아프리카에서는 풍부한 지하자원과 높은 수준의 인력 자원 등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가운데 무한한 경제적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경제계는 단일 통화 구축으로 세계시장에 한 단계 더 도약할 아프리카를 제3의 대륙이 아니라 우리 경제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동반자로 여겨야 할 것이다.


출처: SADC 역내 단일통화 담화문

South African Reserve Bank 

http://www.reservebank.co.za/internet/publication.nsf/Print/5F1D1A40B7CDDC274225785C0036BF9E/?opendocu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