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이주민 문제는 이미 오래전, 즉 유럽의 식민 지배 시기부터 제기되어 왔던 문제이다. 독립 이전의 이주민은 식민 경제가 주요인이었다면, 독립 이후의 이주는 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탈냉전 이후 종족, 종교 혹은 국가 간 분쟁이 증가하면서 현재 아프리카 역내 이주민 수는 2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 패턴은 자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우의 대부분 이주자는 장소 혹은 공간이라는 정의를 자유, 현대 물질문화로의 자유로운 접근, 질적인 삶과 마지막 생존을 위해 언제든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곳으로 간주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이주는 무조건 배타해야 하는 것으로만 여겨지는 것은 아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주민이 사회 노쇠 현상을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 정치․사회적 신축성을 위한 수단, 값싼 노동력 제공의 제공 등의 역할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나마 부족한 일자리의 빼앗김, 사회․문화적 정체성의 혼란 조장 등에 의한 사회적 위기의 요인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특히 비자발전인 이주자들 즉, 난민들의 문제-현재 아프리카에는 약 천만 명의 강제 이주민이 있다-는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발적 이주자들은 노동하려는 이주자들로 이주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서 일정 정도의 자본과 일에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 또한 이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대부분 자발적인 이주자들의 평균 나이는 노동의 경험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40대라는 점에서 이들이 이주를 받아들이는 국가의 경제 발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코트디부아르 경우는 약간 다름),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탈냉전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은 종족, 종교 혹은 다른 사회적 요인에 인한 정치적 내홍을 경험하거나 아직도 겪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요인은 권력 분점, 자원분배, 민족 혹은 종족적 정체성 보호․유지 등 다양하다. 따라서 코트디부아르의 초대 대통령 우부에-브와니는 외국인(여기서 외국인은 코트디브아인을 제외한 모든 아프리카인) 이주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국내의 사회․정치적 갈등을 회석시키려고 했었다.
필자의 판단으론, 우부에-브와니의 이주민 정책은 완전히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코트디부아르-60여 개의 민족 집단이 존재함-가 서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세네갈 다음으로 가장 안정적인 국가가 된 것에는 이주민 정책이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은 1884년 베를린 회의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국경 안에서 이렇다 할 국가적 정체성의 확립 없이-식민 지배는 국가적 정체성 대신에 부족적(tribal) 정체성을 부추김-독립을 맞이했고, 독립 국가는 국민통합과 신식민주의로부터의 탈피라는 명목으로 사회 구성층의 다원화보다는 일부 민족 혹은 종족, 또는 사회계층을 위한 국민 통합으로 사회갈등 문제를 단일정당과 중앙집권화라는 제도로 인위적으로 봉합하였다. 이러한 ‘판도라’ 상자는 IMF의 구조조정으로 ‘약한 국가’에게 개방되었고, 이것이 사회․정치․군사적 분쟁으로 나타나면서 불안한 국가의 행보로 이어졌다.
따라서 계절적이든 아니든 오늘날의 자발적인 이주는 한편으로는 한 사회의 오래된 혹은 배타적인 정체성 문제와 맞부딪칠 수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의 역기능을 정치적․경제적 순기능으로 이용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정책 확립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